산불 이재민들 소규모 대피소서 불안·불편 속 희망 찾기 안간힘
(안동=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목숨을 건져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니까 잃어버린 것들이 떠올라 우울감이 몰려와요"
28일 안동시 임하면 복지회관에 마련된 산불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조모(52)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사흘 전 임하면을 덮친 산불이 일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앗아갔기 때문이다.
조씨는 "갑자기 사방이 새카만 연기로 가득 차더니 불덩이가 날아다니는 불바다로 변해버렸다"며 "뭘 챙길 시간 없이 일단 몸만 빠져나와 겨우 대피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불길은 사그라들었지만, 마을에는 여전히 희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대피소 바로 앞 농협 건물이 불에 타면서 불쾌한 냄새가 진동해 주민들은 창문조차 열지 못했다.
하지만 조씨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고 규모가 큰 초등학교 대피소 대신,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이곳을 선택했다.
현재 이 대피소에선 60여명의 이재민이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밤을 보내고 있다.
공간을 분리해줄 구호 텐트 대신 바닥에 매트를 깔고 지내고 있고 이불 등이 부족해 불편한 점이 많다.
그런데도 피해를 덜 본 주민들이 십시일반 떡과 과일 같은 간식을 나누고 서로 파스를 붙여주며 마음을 다독였다.
이 대피소에서 5km 정도 떨어진 임하1리 마을회관에서도 이재민들은 서로 기대며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충격이 커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에게 젊은 주민들은 곁에서 피해 접수 서류 작성을 도왔다.
한쪽에서는 전국에서 온 구호 물품을 정리하며 서로가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손을 보탰다.
하지만 불안과 상실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오대리 주민 권모(55) 씨는 "낮에는 이웃들과 얘기하면서 위로도 받고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는데 밤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몰려와 바깥바람을 쐬러 나가곤 한다"며 "불이 꺼져야 집을 철거하고 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산불이 잡히지 않아서 걱정이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이재민 김모(58)씨는 "혹시 건질 게 있을까 싶어 무너진 집을 매일 찾아가 보지만 다칠까 봐 막상 들어가 보진 못한다"며 "이재민 생활이 3일밖에 안 됐는데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번 산불로 의성, 안동 등에는 160개 이상 대피소가 운영 중이며 다수 주민은 실내에 마련된 구호용 텐트나 차가운 바닥에 매트를 깔고 생활하고 있다.
다수가 대피 당일 휴대전화만 들고 빠져나온 탓에 생활 도구나 의약품 등도 부족하지만 대피소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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