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한국이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 겪을 가능성은

연합뉴스 2025-03-28 11:00:03

'일본화 지수', 태국·중국 이어 한국이 3위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형성된 자산 거품이 1990년대 초부터 터지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무너져 내렸다. 이후 고령화가 진행되고 구조조정이 늦어지는 등 구조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디플레이션이 이어졌다. 일본의 장기 불황(Secular Stagnation)은 시간이 갈수록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 등의 용어로 대체되며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아 왔다.

최근 한국에서도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세가 이어지고 신성장 동력의 부재, 저출생 고령화 등이 가중되면서 갈수록 일본의 장기 저성장 국면을 닮아간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국내외 연구기관들에서도 과감한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우리 경제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일본처럼 'L자형'의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가 직면한 장기 저성장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와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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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화 지수', 태국·중국·한국·홍콩 높아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최근 '일본화 지수'(Japanification Score)를 이용해 주요국의 장기 저성장 위험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일본화 지수는 1990년대 일본의 경제 상황을 기준으로 삼아 국가별 장기 저성장 위험을 물가, 부채, 부실채권, 생산연령인구, 자산 가격, 잠재성장률, 생산성 등 10개 항목으로 평가해 만든 지수다.

그 결과를 보면 작년 기준 한국의 일본화 지수는 6점(10점 만점)이었다. 전 세계 주요 30개국 중 태국과 중국이 각 7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한국과 홍콩은 각 6점으로 공동 3위였다. 이들 상위 4개국에서는 높은 부채비율, 생산연령인구 증가율 하락, 주식가격 하락 등의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주요국 일본화 지수. [국회예산정책처 제공]

2019년과 비교하면 한국은 5년간 부채비율과 주식가격 등 2개 항목의 점수가 추가돼 4점에서 6점으로 올랐고 중국은 근원물가 상승률, 주택가격 등 2개 항목이 추가돼 2019년 5점에서 작년 7점으로 상승했다.

반대로 스페인(0점)과 미국(1점), 유로존(1점)은 작년 기준 일본화 지수가 낮은 편에 속한 국가들이었고 독일을 제외한 유로존과 미국은 작년 지수가 5년 전보다 떨어졌다.

'일본화'로 표현되는 장기 저성장 위험을 키우는 요인 중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다. 20∼64세의 생산연령인구가 줄면 노동투입량이 감소해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가계 등 민간 부문의 부채가 많아도 성장을 저해하고 주택이나 주식 등 자산의 가격이 하락해도 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가와 잠재성장률의 하락도 일본화 지수가 높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한국은 5년 평균 생산연령인구 증가율이 -0.9%로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인 데다 민간부채 비율도 201.9%(2024년 3분기 기준)로 대상 국가 중 2번째로 높았다. 잠재성장률(추정치)은 2011∼2015년 3.46%에서 2021∼2025년 2.19%로 떨어졌다.

◇ "이대로 가면 저성장 국면 진입"…늘어가는 경고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건 외환위기였던 1998년(-4.9%)과 코로나19가 발생했던 2020년(-0.7%)이었다. 2000년 이후 성장률이 2.0%에 못 미쳤던 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2023년(1.4%)이었다. 2002년(7.7%)과 2010년(7.0%)엔 7%대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2004, 2006, 2007년에는 5%를 넘는 성장세가 유지됐다. 하지만 2011∼2019년엔 2∼3%대로 하락하더니 2020년대 들어선 1∼2%대로 내려앉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이 1.5%에 그칠 것으로 본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5%로 대폭 낮췄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대부분 1%대 초중반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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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안팎에 달했다가 2010년대 연평균 3% 초중반으로 떨어졌고 최근 2% 수준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의 하락추세가 이어진다면 2040∼2044년 0.7%로 낮아진다는 게 한국은행의 전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한 강연에서 "현 출산율이 지속되면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작년 말 보고서에서 리스크 요인들이 현실화하면서 수출 경기가 경착륙하고 내수를 부양할 모멘텀마저 없을 경우 장기간 불황 국면이 지속되는 'L'자형 장기 불황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출산율도 제고하도록 지속적인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일과 가정 양립 정책으로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공급 둔화에 대응하고 여성·고령층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안도 필요하다. 기업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혁신기업을 키워 새로운 성장의 기반이 될 먹거리를 발굴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국회예산정책처 김경수 경제분석관은 "생산연령인구 감소, 높은 민간부채 비율, 잠재성장률 하락 등 장기 저성장 위험이 커지고 있으므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는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래픽] 한국 잠재성장률 전망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