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역내갈등 고조시키며 美 끌어들이는 게 후티 속셈"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최근 유출된 민간 메신저 '시그널' 채팅방의 대화 내용을 보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수뇌부가 예멘 후티 반군에 폭격을 가하려는 목적은 '홍해 항로 안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티 반군이 홍해를 통과하는 상선들을 공격하고 있으므로 미국이 공습을 통해 이를 억제하고 수에즈 운하로 가는 화물 항로를 다시 열겠다는 것이다.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당시 채팅에서 "지금이든, 지금으로부터 몇 주 후든 화물 항로를 다시 여는 것은 미국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은 현실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게 27일(현지시간) 일간 뉴욕타임스(NYT) 분석 기사의 지적이다.
NYT에 따르면 중동 전문가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을 미국이 꺾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한다.
특히 공군력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은 역사상 별로 없었고 후티 반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병대와 육군이 상륙해 점령하지 않고, 공군 폭격만 해서는 후티 반군에게서 승리를 거둘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로드아일랜드 소재 해군전쟁대학의 제임스 홈스 해전 전략 석좌교수는 미 공군의 위세가 절정에 이르렀던 1991년 쿠웨이트전에서도 이라크를 격퇴하기 위해 미군의 육상 침공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후티가 미국의 공습을 예멘을 넘어 다른 지역까지 입지를 더욱 넓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은 와중에 후티가 세력 확장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외교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에 재직 중인 예멘 출신 파레아 알-무슬리미 연구원은 미군의 최근 공습이 "제발 미국과 전쟁을 하게 해달라는 후티의 기도에 대한 직접적 응답"이라며 지역적 갈등을 더욱 고조시키고 미국을 끌고 들어가려는 것이 후티가 바라는 바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폭격을 강화하는 한편 이란이 후티에 대한 지원을 끊도록 유도하면 후티를 꺾을 수 있으리라고 희망하고 있으나, 기존 경험과 역사에 비춰볼 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후티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반(反)이란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다. 당시 미국은 이란에 압력을 행사해 후티에 대한 지원을 제한하는 데 성공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홍해 항로 재개가 미국 입장에서는 핵심 국익에 관한 사항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출된 채팅방 대화 참가자였던 JD 밴스 부통령은 채팅에서 홍해 항로가 미국보다 유럽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형 화물 선사들은 이미 수에즈운하와 홍해를 거치는 항로를 이용하지 않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아프리카 남단으로 우회하는 대체 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절제된 외교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의 군사분석 책임자 제니퍼 캐버노는 유럽이 이미 대체항로 전환에 따른 부담을 감내할 수 있다고 한 상태에서 미국이 후티를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할 가치는 없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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