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결심 "그만 뜸들이고 더 자주 영화 만들겠다"

연합뉴스 2025-03-28 00:00:15

피렌체 한국영화제 '마스터클래스'서 이탈리아 영화팬 만나

"극장은 감독의 무대…관객 감정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나홍진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

(피렌체=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그래서 일단 저부터 그만 뜸 들이고 영화 자주 찍으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요."

나홍진 감독이 2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피렌체의 라 꼼빠니아 극장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현지 영화팬들과 만나 한국 영화계를 둘러싼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며 한 말이다.

그는 한국 영화계에서 대표적인 과작(寡作) 감독으로 손꼽힌다. 2008년 장편 데뷔 후 지금까지 단 3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작품 간 간격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데뷔작 '추격자'(2008)와 두 번째 작품 '황해'(2010)는 2년 차이가 났지만, 세 번째 영화 '곡성'(2016)까지는 6년이 걸렸다. 차기작 '호프'는 9∼10년 만인 올해 또는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완벽주의적 성향과 집요함으로 매 작품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해온 그가 기존의 창작 스타일을 버리고 더 자주 영화를 연출하겠다고 밝힌 것은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악재가 겹친 상황이지만 현명하게 대처하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의지를 다졌다. 그러면서 행사 시작 때 받은 피렌체 명예 시민증을 들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뭐, 잘 안돼도 이게 있으니까요."

비록 작품 편수는 적지만, 그의 작품은 매번 강렬한 충격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열성적인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이날 470석 규모의 영화관을 거의 가득 채운 현지 관객들은 질의응답 시간에 경쟁적으로 손을 들었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주말이면 한 편이라도 영화를 더 보려고 극장가를 뛰어다녔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나에게 영화는 너무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 영화는 즐기는 것이지 감히 만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미술을 전공하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20대 후반이 돼서야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그저 영화를 완성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는 "당시에는 영화를 만드는데 급급했고, 기대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데뷔작 '추격자'가 개봉한 뒤 몰래 극장을 찾았을 때 일부 관객의 혹평을 듣고 좌절했지만, 결국 예상 밖의 좋은 반응을 얻어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폭력적인 장면에 대한 질문에는 "특별히 폭력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영화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갈등과 긴장이 점층적으로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폭력이 등장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황해' 역시 연변 사람들의 실존 증언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의 삶을 대변하고자 했을 뿐 폭력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제 영화 중에 폭력적인 영화가 있었나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나홍진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

'추격자'와 '황해'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 하정우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추격자'를 하겠다는 배우가 없었다. (하)정우씨가 해주겠다고 해서 만났는데, 능글맞으면서도 굉장히 공격적이고, 너무나 적극적이었다.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며 "막상 작업을 해보니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대단한 배우가 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역인 김윤석 배우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현장에서 노력했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며 "다음 작품인 '황해'에서 그 배우를 섭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부연했다.

나 감독은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얻은 명성과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는 "죄송하지만, 영화잡지도 안 보고 그래서 별로 실감을 못 하고 있다"며 "실감을 좀 시켜주시죠"라고 말해 현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곡성' 같은 경우에는 촬영된 영상을 편집 없이 이어 붙였을 때 5시간 분량이 나오더라. 큰일 났다 싶었다"며 "분량을 줄이라고 해서 편집하면서 작품을 줄였던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곡성'을 오컬트, 호러 장르라는 형식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어서 공부를 많이 했다"며 "이 장르가 어느 시점 이후로는 대가 끊긴 느낌을 받아서 이걸 어떻게 하면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는 사실 겁이 많아 호러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극장에서 보는 것을 피하고, 집에서도 정지 버튼을 조작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본다"며 "이러한 성향이 오히려 나만의 독특한 연출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극장은 감독에게 유리한 무대"라며 "빛과 소리가 차단된 상태에서 관객은 감독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만 접하게 된다. 난 그 안에서 관객이 처음과 마지막에 느끼는 감정의 폭을 최대치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 감독은 차기작 '호프'(HOPE) 작업 중에 제23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의 스페셜 게스트로 초청을 받아 피렌체를 찾았다. 피렌체 한국영화제는 태극기 토스카나 코리아 협회의 리카르도 젤리·장은영 공동 집행위원장이 주관한다.

20년 넘게 이탈리아에 한국 영화를 알려온 피렌체 한국영화제는 오는 29일 열흘 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나홍진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

chang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