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엄연한 우리 역사, 이제 상처 보듬어야
과거 입양 인권침해 조사·책임규명 노력 계속돼야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2016년 7월 미국 법원에서 세 살배기 한국인 입양아를 숨지게 한 미국인 양아버지에게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사건 발생 2년5개월여만이다. 입양된 지 4개월도 안 돼 숨진 입양아의 한국 이름은 김현수. 현수는 선천성 발달장애가 있었고 친모의 양육 포기로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됐다.
양아버지는 어느 날 잠 안 자고 보채는 현수를 홧김에 집어 던졌고, 그 충격으로 크게 다친 현수는 이틀 만에 숨졌다. 양아버지는 참전군인 출신으로 미국 국가안보국(NSA)이라는 확실한 직장에 다녔지만 입양 당시 입양기관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병력을 숨겼다. 예비 양부모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했으면 막을 수도 있었던 비극이다. 부끄럽지만 기억해야 할 우리나라 해외 입양 역사의 아픈 단면이다.
물론 좋은 양부모 밑에 훌륭하게 자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한국계 입양아들도 있다. 프랑스에서 장관을 지낸 장 뱅상 플라세나 플뢰르 펠르랭,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미국의 토비 도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성공한 일부 입양아 이야기가 전체 입양아가 처한 현실을 호도한다는 주장도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6일 과거 아동들이 국외에 입양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입양인에게 국가가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결정을 했다. 11개국에 입양된 한인 367명이 입양과정에서 서류 조작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조사를 신청한 지 2년 7개월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국가기관이 과거 해외 입양의 인권침해를 확인하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기는 처음이다.
다만 이번 결정이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있다. 진실화해위가 1차 진실규명 대상자 98명 중 56명만 피해자로 인정했고 나머지 42명은 자료 미비로 보류 결정을 해서다. 이날 신청인 사례 발표자로 참석한 김유리 씨는 "저는 임시로 고아원에 맡겨졌고 어머니가 입양동의서를 써주신 적 없다"고 했다. 그는 고아로 서류가 조작된 채 1984년 프랑스로 입양됐고 어린 시절 양부모로부터 학대당했다고 한다. 김 씨는 "우리는 국가의 피해자들이다. 부끄러워도, 부끄러운 역사 받아달라"며 무릎 꿇고 호소했다.
해외 입양은 6·25 전쟁의 고통스러운 산물이다. 전쟁으로 인해 고아뿐 아니라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의 혼혈아들이 많이 생겼는데 당시 정부는 이들을 모두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전쟁 고아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미군 혼혈아들을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낸다는 명목하에 휴전 첫해인 1953년 해외 입양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보건복지부 통계 등에 따르면 2023년까지 국제 입양된 아동은 16만9천859명으로 비공식 통계까지 더하면 2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전쟁의 폐허 속에 생존조차 힘들어 '입 하나라도 줄이겠다'며 젖먹이를 외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아픈 과거다. 그렇다고 지울 수도 없는 엄연한 우리 역사다. 대한민국은 그런 역사를 딛고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입양된 아이들의 상처와 고통이 담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그 진실과 화해해야 한다. 국가는 그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우리가 키워야 한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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