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가장 넓은 분포 면적을 자랑한다. 소나무의 개체수도 가장 많아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다.
소나무는 장수의 상징으로 십장생 중 하나다.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치는 겨울철 강추위 속에서 항상 푸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우리 선조는 소나무를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런 이유로 소나무는 우리나라 의식주와 종교문화 또 회화, 문학, 민속 등에서 우리의 정서와 기질을 대변해주는 상징이었다.
우리 조상은 소나무를 주재료로 다양한 소나무 술을 즐겼다. 주로 사용된 소나무술의 재료는 소나무꽃(송화), 송순, 관솔, 송절 등이다.
소나무꽃(松花)은 송화라고 불렸으며 꽃보다는 꽃에서 나오는 송홧가루를 지칭했다. 송순(松荀)은 소나무의 새순을 말하며 관솔은 송진이 엉겨 있는 소나무 가지 또는 옹이를 지칭했다.
송절(松節)은 싱싱한 소나무 가지의 마디를 뜻하며 송엽(松葉)은 요즘 청량음료 시장에서도 당당히 한몫 차지하는 솔잎이다. 송근(松根)은 소나무 뿌리를 말한다.
현대에 와서는 소나무 술의 종류가 보다 다양해지고 증류주, 약주뿐만 아니라 막걸리도 소나무를 재료로 빚기도 한다. 소나무술이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된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호(보유자 이성자)인 서울 송절주는 송절, 진득찰, 당귀, 진달래꽃(봄, 가을에는 국화), 솔잎 등을 넣어 빚은 술이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규합총서'(閨合叢書) 등에 소개돼 조선 중엽인 16세기부터 빚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선조 때 충경공 이정란 장군의 14대손 이필승의 처 허성산(1892∼1967) 여사가 송절주를 빚었다. 그런 다음 자부인 박아지 여사에게 전수됐다. 현재는 그 자부인 이성자 여사가 계승하고 있고 그의 자부인 박민정 씨가 전수자로 지정돼있다.
송화백일주는 전북 무형문화재 제6-4호로 전북 완주의 천년 고찰 수왕사의 주지이자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1호인 벽암 스님(속명 조영귀)이 전수자다. 송화백일주 12대 전수자 벽암 스님은 소나무의 꽃가루와 솔잎을 침출해 사찰주로 빚었다.
그 외에 산수유, 구기자, 국화, 당귀, 하수오, 감초 등이 들어간다. 물의 왕이라는 뜻의 절 이름인 수왕사답게 사찰 내 절벽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에 찹쌀, 멥쌀, 누룩을 혼합한 다음 100일간 발효, 숙성시켜 만든다.
약 1천300여년 전 신라 진덕여왕 때 부설 거사가 영희와 영조 등 당시 도반 승인들과 함께 수행하다 헤어지면서 그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송화 곡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많은 학자는 이 기록을 송화백일주의 시초로 봤고 현재 12대째 수왕사 주지들에게만 비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벽암 스님은 송화백일주의 전통 제조법을 보존하고 전수, 연구, 후진양성 등을 위해 1992년에 수왕사 근방에 송화양조를 설립했다. 그곳에서 38도의 송화백일주 리큐르와 16도의 송죽오곡주 약주를 생산하고 있지만 송화와 솔잎의 재료가 워낙 소량이라 1년에 2천여병만 생산한다.
함양 송순주는 원래 '솔송주'로 잘 알려진 술이다. 국가유산청의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는 함양 송순주라 등재돼 있어 편의상 송순주로 표기했다.
함양 송순주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35호(보유자 박홍선)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역사성이 깊은 명주다.
조선조 오현 중 한 분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하동 정씨 문중에서 530년간 전해 내려오는 전통 가양주다. 현재 보유자는 정여창 선생의 16대손 정천상 씨의 부인인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7호 박흥선 씨다.
쌀과 누룩을 기초로 송순과 솔잎을 넣고 빚은 솔송주는 주세법상 약주다. 송순과 솔잎은 매년 봄 4월 중순에서 5월 초 사이에 문중 선산인 마을 주변 산에서 채취한다. 또, 술을 빚을 때 중요한 물은 지리산 맑은 물을 사용한다.
현재 정씨 문중에서는 발효주법으로 만든 약주인 13도의 솔송주와 이것을 증류한 40도의 증류주 담솔을 생산 중이다.
대전과 전북 김제에도 송순주가 있다. 대전 무형문화재 제9호인 윤자덕 명인의 소나무술이다. 400년 전통 대전 송순주 보유자 윤씨는 충남 서천 출신으로 은진 송씨 송병하(1642∼1697)의 12대 장손가로 시집온 후 송순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집안에 내려오는 필사본 요리서인 '주식시의'(酒食是儀)와 '우음제방'(禹飮諸方)에는 송순주와 기타 가양주의 제조법이 실려있다. 윤씨는 맏며느리였기에 시어머니로부터 종가의 제례 등 집안 대소사에 필요한 것들과 가양주 빚는 법 등을 전수받았다. 대전 송순주는 발효주 방식으로 빚는다.
김제의 송순주도 전북 무형문화재(제6호, 보유자 김복순)다. 김제 송순주는 송순으로 만든 덧술에다 밑술을 걸러 내버린 소주를 섞어 만든 혼합주다.
경주 김씨 가문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선조 때 병조정랑을 지낸 김탁(金鐸)이 평소 위장병과 신경통을 앓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비구승이 찾아와 김탁의 부인에게 비방을 알려줬다고 한다. 이에 그의 부인이 비방대로 송순주를 빚어 약으로 사용하니 김탁의 병을 고치게 됐다. 이후로 송순주는 경주김씨 가문의 가양주로 전통을 이어오게 됐다고 한다.
경북 안동에는 경북 무형문화재 제20호인 송화주(보유자 김영한)가 있다. 안동 송화주는 퇴계학파의 거봉인 전주 류씨 정재 류치명(柳致明·1777∼1861) 종가에서 200여년 동안 전승해 오는 술로 제사나 손님 접대에 쓰인다.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전주 류씨 무실파 정재 종택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늦가을 무렵에 솔잎과 황국(黃菊), 금은화(金銀花), 인동초(忍冬草) 등을 재료로 빚은 술이다.
충북 보은에는 송로주(충북 무형문화재 제3호·보유자 임경순)가 있다. 송로주는 쌀, 소나무 옹이인 관솔,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令)이 주재료다. 고두밥에 누룩과 관솔, 복을 넣고 물을 부어 숙성시킨 후 증류시키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전통 증류주다.
송로주의 제조법은 이전 기능보유자 신형철 씨의 외조모인 정금이 씨가 저술한 1880년의 '음식법'이라는 책과 16세기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에 유일하게 수록돼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은 소나무를 사랑했다. 그래서 소나무로 다양한 술을 빚어 마셨다. 그것은 현대에도 이어져 더 많은 종류의 소나무술을 빚어 현재에도 마실 수 있게 됐다. 술뿐만 아니라 그 기개와 지조, 절개도 이어받아 후손에게 이어 내려줘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한국의 전통과 유산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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