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과정서 눈물의 이별…경제·행정적 난관에 재상봉은 소수
통신·교통 등 인프라 열악한 아프리카는 가족찾기 더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그는 나에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지금 모든 것이 힘드네요."
3년 전 남편과 연락이 끊긴 에티오피아 여성 티에그스티 데스타(33) 씨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슬픔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지만, 금방이라도 펑펑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데스타 씨는 남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이 이산가족 인터뷰는 올해 1월 인도주의 국제기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공개됐다.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주에서는 2020년부터 정부군과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의 내전으로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는데 데스타 씨도 그 중 한명이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들과 딸을 돌보면서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데스타 씨는 "남편에 대한 소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며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그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의 생사조차 모르는 절망적 상황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헤어진 가족과 8년만의 포옹 '희망의 힘'
꿈에 그리던 가족과 재회하는 난민들도 있지만, 그 과정은 불확실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남성 발리 바루티 씨는 2023년 10월 그리스 아테네의 국제공항에서 부인 레이철, 네 자녀(13∼21세)와 8년 만에 포옹했다.
바루티 씨는 민주콩고 내 TV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하던 중 시위 현장에서 폭력 사태를 촬영했다는 이유로 감금된 뒤 고문을 당했다.
이후 생존을 위해 민주콩고에서 홀로 탈출했고 위험한 여정을 거쳐 2016년 3월 아테네에 도착했다.
그는 가족과 다시 만날 때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2017년 11월 그리스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뒤 가족 재결합 승인을 비롯한 행정 절차 지연 등으로 5년 넘게 애태워야 했다.
바루나 씨는 "희망을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며 안도했다.
◇삶의 터전 잃고 가족과 생이별 '이중고'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은 것도 비극인데 가족과 이별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만 봐도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UNHCR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무력 분쟁, 정치적 박해, 자연재해 등에 따른 강제 실향민은 작년 6월 기준 1억2천260만명이다.
이들의 약 37%인 4천620만명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출신인데 상당수가 이산가족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안전을 위해 집을 떠나거나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가족과 헤어졌다.
분쟁 지역에서 성인 남성이 전장으로 끌려가면 아내와 자녀들이 먼저 다른 국가로 피신하게 된다.
또 난민을 비롯한 강제 실향민들은 브로커를 끼고 인접국으로 탈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브로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일부 가족만 먼저 피신하는 경우가 많다.
2년가량 이어진 수단 내전에서도 이산가족이 대거 발생했다는 점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미국의 난민 지원단체 '히브리이민자지원협회(HIAS)'에 따르면 2023년 4월 이후 수단에서 이웃 국가 차드로 넘어온 난민의 86%가 어린이나 여성이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문제 등 여러 이유로 다시 상봉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가족이 서로 다른 국가에 체류한다면 가족 증명 서류 준비, 입국 비자 신청 등 절차가 복잡하다.
UNHCR에 따르면 난민 가족의 재결합이 12년이나 지연되는 일도 있었다.
헤어진 가족의 소재가 파악되더라도 이동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 있다.
◇이산가족 재결합은 인간 존엄의 권리 "상봉 소수라도 의미있어"
이산가족 재결합은 보통 인간 존엄을 위한 권리로 간주된다.
세계인권선언은 자유권 규약 및 사회권 규약을 통해 가족생활에 대한 보호를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한다.
ICRC, UNHCR 등 국제기구들도 이산가족의 연락 재개 및 재결합에 공을 들이지만, 상봉에 성공하는 가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ICRC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중동으로 분류된 이집트 제외)의 가족찾기 신청에서 2023년 한해 가족의 생사나 소재가 파악된 이는 8천381명이고 가족과 재결합한 사람은 816명이다.
그해 말 기준 가족 실종자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경우가 6만9천495명으로 훨씬 많다.
통신, 교통 등 인프라가 열악한 아프리카에서는 가족찾기가 더욱 어렵다.
ICRC의 알리오나 시니앙코 동아프리카 담당 대변인은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난관이 수두룩하다"며 "예컨대 수단만 하더라도 도로가 없거나 통신 차단 등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초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로 혼란에 빠진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우 피란민들이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이산가족 소재를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고 전했다.
시니앙코 대변인은 이런 지난한 상황에서 ICRC가 각국 적십자사, 적신월사의 자원봉사자 네트워크와 협력해 이산가족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면서 "비록 막대한 규모의 요청에 비해 이산가족 상봉 성과는 적지만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