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잃고 '김일성에 복수' 원했던 김석연 일병, 75년만에 귀환

연합뉴스 2025-03-27 12:00:02

피난 과정에서 아내 숨지고 아들도 못 챙겨…카투사 입대 뒤 장진호 전투서 숨져

미군이 北에서 전달받아 2020년 한국으로 봉환한 유해에 포함

김석연 일병의 유해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6·25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평가되는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병사의 유해가 75년 만에 딸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고(故) 김석연 일병의 유해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김 일병의 유해는 미군이 북한으로부터 전달받아 2020년 한국으로 봉환한 유해에 포함돼 있다가 올해 신원이 최종 확인됐다.

고인은 1922년 8월 서울 중구에서 3남 1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1944년 10월 결혼 후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고인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난길에 올랐지만, 이 과정에서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너무 어렸던 둘째 아들을 미처 데려오지 못했다고 한다.

고인의 딸인 김문숙(79) 씨는 "어릴 적 조부모로부터 '네 아버지는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군에 입대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1950년 8월 카투사(KATUSA·주한미군 배속 한국군)로 입대한 고인은 1950년 11월 27일∼12월 11일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장진호 전투는 동부전선의 미 제1해병사단 및 제7사단 31연대 등 유엔군이 북방으로 진출하던 중 7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 제9병단에 포위돼 2주간 펼쳤던 철수 작전이다.

국유단은 유해가 발굴된 북한 장진군 신흥리 일대의 전쟁사 연구를 토대로 병적부와 전사자명부를 분석해 전사자 각각의 본적을 확인하고 지방자치단체 등의 협조를 얻어 유가족 소재를 추적했다.

이어 유가족 자택을 일일이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한 결과 김 일병과 딸의 부녀 관계를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딸 문숙 씨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솔직히 아버지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만, 유해를 찾았다고 하니 이제 아버지라는 실체가 느껴진다"며 감사를 전했다.

김 일병 신원 확인으로 2000년 4월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래 가족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총 248명이 됐다.

6·25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할 수 있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 신원이 확인되면 포상금 1천만 원이 지급된다. 국유단(☎ 1577-5625)으로 문의하면 된다.

국유단은 "참전용사와 유가족 고령화 등으로 인해 유가족 찾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j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