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우크라에서 러군 전면 철군해야 대러 제재 해제"
트럼프 "일부러 질질 끄는 것일 수도" 러 지연 전술 인정 시사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3년 넘게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중재로 흑해에서 휴전하고 에너지 시설에 대해 30일간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지만 러시아가 선결 조건을 제시하면서 양측의 부분 휴전안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일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들을 앞세우며 휴전을 노골적으로 지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합의된 휴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달라고 미국에 촉구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미국의 중재로 도출된 우크라이나와의 부분 휴전안과 관련, 러시아 식품과 비료 수출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해제된 이후에야 합의가 이행될 것이라고 지난 25일(현지시간) 밝힌 바 있다.
크렘린궁은 러시아 국영 농업은행과 농산물 수출 관련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풀고 이들 기관을 국제 결제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재연결해야 합의의 효력이 생긴다며 국영 농업은행 등에 대한 서방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타스 통신은 26일 "제재를 해제하고 러시아 금융 기관을 SWIFT에 다시 연결하는 것은 유럽이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은 러시아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대서양 건너에 있는 파트너(유럽)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러시아의 이런 전략에 대해 유럽은 즉각 선을 그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니타 히퍼 유럽연합(EU) 외교안보담당 수석 대변인은 26일 입장문을 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부당한 침략이 끝나고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서 조건 없이 철수하는 것이 대러시아 제재를 개정·해제하는 주요 전제 조건"이라며 당장은 러시아의 제재 해제 요구에 응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히퍼 대변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부분 휴전 합의는 환영한다면서도 "러시아는 불법적이며 정당한 이유 없는 침략 전쟁을 끝내려는 진정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 러시아는 말이 아닌 그들의 행동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이 말해준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제재를 포함한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최대화하는 것이 여전히 EU의 주안점"이라고 강조했다.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며 지난 1월 취임한 이래 휴전을 끌어내기 위해 분주히 중재 외교를 펼쳐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러시아가 일부러 휴전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미 뉴스맥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들(러시아)은 (휴전 이행을 위한) 대여섯 가지 조건을 내세웠고 우리는 그것들 모두를 살펴보고 있다"며 크렘린궁이 휴전 협상을 "질질 끌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우크라이나전 종식을 위해 주로 우크라이나를 호되게 압박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급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휴전 노력이 러시아에 발목을 잡히며 난관에 부딪혔음을 인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러시아의 이런 전략을 부동산 사업가로서 자신이 과거에 실행해온 전략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나도 그것(협상)을 수년 동안 해왔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게임에는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것 말이다. 어쩌면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확실히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지연 전술과 관련, 로리 브로스토우 전 주러시아 영국 대사는 "이런 것들은 전형적인 크렘린 협상 전략"이라며 "그들은 의제와 시간표를 통제하려 시도하면서 할 수 있는 한 거의 모든 것에서 최대치의 양보를 끌어내는 동시에 자신들은 거의 아무런 대가도 치르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제재 해제 등의 휴전 선결 조건을 제시한 러시아를 미국이 압박해 줄 것을 촉구했다고 영국 BBC는 보도했다.
파리를 방문 중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26일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에 저항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러기를 바란다. 그들은 아마 그럴 것이다. 지켜보자"며 러시아가 휴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미국이 나서달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초당적 지원에 "매우 감사하다"면서도 일부는 러시아측 주장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