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고졸 신인 데뷔전 투구 수 역대 2위
부상 피하려면 선발 간격 조정 등 후속 조처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는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철저하게 투수를 관리하는 팀이다.
여간해서는 연투를 피하고, 불펜 투수의 멀티 이닝(1이닝 초과 투구)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래서 고졸 신인 정현우(18)의 프로 데뷔전 122구 역투가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정현우는 26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방문 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 5이닝 8피안타 7볼넷 4탈삼진 6실점(4자책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5이닝 아웃카운트 15개를 잡느라 필요했던 투구 수(122구)만 보더라도, 정현우의 데뷔전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어렵게 알 수 있다.
정현우는 지난 시즌 통합 챔피언 KIA의 강력한 타선을 맞아 매 이닝 위기를 겪고도 5회를 버텨냈다.
이미 4회까지 93개를 던진 정현우는 11-4로 앞선 5회에도 등판했다.
선두타자 변우혁에게 단타, 김태군을 우익수 뜬공으로 잡은 그는 윤도현에게 2루타를 맞고 1사 2, 3루 실점 위기에 몰렸다.
이때 투구 수가 105개로, 신인 데뷔전임을 고려하면 교체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키움 벤치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정현우는 최원준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데뷔 승리 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1개만 남겼다.
힘이 빠진 정현우는 경기 초반보다 구속이 시속 3∼4㎞ 떨어져 시속 130㎞ 후반대 직구를 던졌고, 패트릭 위즈덤에게 볼넷을 허용해 모든 베이스를 채웠다.
나성범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았음에도 키움 벤치는 정현우에게 기회를 줬고, 최형우를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내고서야 5회를 마쳤다.
정현우가 던진 122구는 KBO리그 고졸 신인 데뷔전 투구 수 2위다.
이 부문 1위는 1991년 4월 24일 부산 OB(현 두산) 베어스전에서 롯데 자이언츠 신인 김태형이 던진 135개(9이닝 1실점)다.
키움은 난타전 끝에 KIA에 17-10으로 이겼고, 정현우는 KBO 역대 12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을 따냈다.
'전체 1번 지명 신인' 정현우에게 데뷔전 선발승으로 자신감을 심어 주겠다는 키움 벤치의 선택이 성공한 것이다.
이를 두고 야구계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간다.
'인생에 한 번뿐인 데뷔전이라 이해한다'는 의견도 있고, '고졸 신인이 데뷔전에서 120구를 넘긴 건 부상 우려 때문에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 경기를 중계로 지켜보던 한 구단 관계자는 "투수를 애지중지하던 키움이라 더 놀라운 선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키움은 리그에서 가장 '혹사'와 거리가 먼 팀이다.
홍원기 키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4시즌 동안 불펜 투수가 1이닝을 초과해 던진 경기는 321회로 같은 기간 리그 평균(1천134회)의 28.3%에 불과했다.
키움 선발 투수들은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6월이면 차례대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한 번씩 빠지는 '정기 여름휴가'를 받아 체력을 보충한다.
만약 키움이 '눈앞의 1승' 때문에 신인 투수에게 데뷔전부터 120구를 넘게 던지게 했다면 논란이 더욱 커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승리 가능성만 생각하면, 25일 광주 KIA전은 오히려 일찍 투수를 교체하는 게 키움에는 더 유리했을 것이다.
키움이 올 시즌 외국인 투수를 1명만 기용한 이유는 젊은 선발 투수에게 기회를 주고 육성하기 위해서다.
정현우는 이 경기를 통해 프로 수준의 타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5이닝을 채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느꼈다.
중요한 건 후속 조처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하더라도, 데뷔전 122구 투구로 정현우의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다음 선발 순서를 건너뛰는 것을 포함해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정현우의 데뷔 시즌 총 투구 이닝과 투구 수도 면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키움이 정현우를 뽑은 뒤 말한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의 뒤를 이을 왼손 투수"라는 극찬이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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