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예산에 산불 방지 예산 반영 절실…헬기 확충, AI·드론 활용해야
실화죄 처벌 강화에는 실효성 의문…경북 산불 초기 대응과정 되짚어봐야
(전국종합=연합뉴스) 기후변화에 따라 산불은 대형화·상시화하며 파괴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27일 전문가들은 더 많은 장비와 전문화한 인력을 확보하고, 기존 봄철·가을철 집중 대응에서 탈피해 365일 상시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드론과 인공지능(AI), 항공기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한편 큰 피해를 남긴 이번 경북 북부 산불 초기 대응 과정 등을 되짚어 새로운 대응 체계를 준비해야한다고 촉구했다.
◇ 장비·예산 확충 최우선…군대처럼 조직화한 산불진화대 필요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산불 대응 장비와 관련 예산을 확충하고, 군대처럼 조직화한 산불특수진화대 확대·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경남 산청에서 60대 산불진화대원 3명과 30대 인솔 공무원 등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산불진화대원 고령화 문제가 대두됐다.
지난 26일에는 경북 의성 산불 현장에서 진화 헬기 1대가 추락하는 안타까운 사고까지 발생했다.
사고 헬기는 1995년 7월 생산돼 30년 가깝게 운행한 노후 헬기로 파악됐다.
이규태 충남대 연구교수 겸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장은 "산불 진화는 전문성과 훈련이 필요한 위험한 작업으로, (인력 고령화 논란은) 단순히 청년 인력이 없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군대처럼 조직화하고 전문화한 진화대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별로 산불 위험 수준에 따라 법적으로 최소한의 진화 인력과 장비 기준을 갖추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방청이 '소방력 기준'에 따라 소방 인력·장비를 배치하듯 산림 면적이 넓은 지자체는 더 많은 진화차·헬기 등이 배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재난 대응은 '최대 대응 원칙'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산림청과 지자체가 실제 재난 상황에 맞는 예산 편성을 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고,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할 때 산불 대응 예산이 반드시 반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연구사는 "산불 진화의 핵심은 헬기로, 하루에 여러 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상황에서 헬기가 부족하다 보니 진화율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산불특수진화대를 중심으로 지상 진화 작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곽주린 전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장은 "우리나라 산불 진화 방식이 헬기를 중심으로 한 공중 진화에 치중된 측면이 있다"며 "미국·캐나다처럼 지상 진화를 더 주력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 200명 규모인 산불특수진화대는 경찰·소방관에 준하는 체력 검정을 거쳐 공무직으로 채용되는데 이를 확대해 전문화·정예화해야 한다"며 "산불전문예방진화대와 산불감시원은 재정 일자리 사업으로 추진돼 지역사회 고령 인력이 주로 채용되기 때문에 정예화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 이제는 365일 대응 체계로…드론·AI 등 장비 도입 시급
지금까지 봄·가을철 2∼3개월씩 산불 조심 기간으로 지정하고 집중적으로 대응했던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 변화와 산불 발생 경향에 맞춰 대응 체계도 연중 상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난·환경연구부장은 "산불의 연중 상시화·대형화가 일상처럼 굳어가고 있다"며 "365일 상시 대응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봄철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난 뒤 7월에 산불이 발생한다고 하면 대응 장비·인력이 한정적일 것"이라며 "상시 대응 체계로 가야 훈련이 되고 관련 지식·경험이 축적되는 만큼 산불 관리 시스템도 기후변화 시대에 맞게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드론이나 AI 등 첨단 장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은 "지난 22일 하루에만 29건의 산불이 발생했다는 점은 현행 예방 체계에 커다란 허점이 드러난 것을 뜻한다"며 "드론이나 AI 등 무인 기술을 활용해 산불 감시 체제의 한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명수 국립산림과학원 국가산림위성정보 활용센터장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기상 상황을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확산 예측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병두 부장도 "헬기가 뜨지 못하는 야간 시간대 공중 진화 역량을 높이려면, 고중량 드론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야간에도 운영할 수 있는 항공기 사용을 한번 검토해 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 실화 처벌 강화는 '글쎄'…대응 매뉴얼 재정립 필요
전문가들은 다만 실화죄 처벌 강화는 실효성 있는 대책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이번 대형 산불이 입산자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알려지면서, 국회전자청원 시스템에는 실화죄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온 상태다.
권춘근 연구사는 "여러 국가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실화 관련 처벌 수위가 이미 높은 편"이라며 "얼마 전에 관련 처벌 수위 높인 걸로 알고 있어 그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도 "처벌을 강화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하루아침에 눈에 띄게 효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라며 "처벌을 강화하되 예방 홍보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이번 경북 북부 지역 산불의 원인, 확산·대응 과정을 꼼꼼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 전문위원은 "이번 산불이 경북 북부권을 덮친 초대형 재난으로 확산한 과정을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주민 대피령은 제대로 가동됐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기후 위기 시대에 산불과 같은 재난은 인간이 생각하고 예측한 것보다 더 빠르고 압도적으로 다가온다는 게 국제 사회가 바라보는 관점"이라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재난 대응 매뉴얼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재 교수는 "산불의 경우 산림청과 지자체, 소방 등 사령탑이 한 곳으로 집중돼 있지 않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생길 수 있다"며 "이번 산불 이후 각 부처가 모여 효과적인 운영 방안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장비와 인력도 기본적인 대비가 필요하겠지만 이번처럼 초대형 산불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마련해 두는 것도 무리"라며 "세밀하고 효율적으로 관리·운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정인 권준우 심민규 김상연 변지철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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