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삶의 또 다른 모양"…신간 '알츠하이머 기록자'

연합뉴스 2025-03-27 09:00:05

알츠하이머 기록자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부디, 마지막에는 조용히 노화를 받아들여 '무위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노인 인지증 연구자인 사이토 마사히코가 최근 출간한 '알츠하이머 기록자'(글항아리)는 저자의 어머니가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쓴 치매 환자 관찰일지다.

저자의 어머니는 83세에 치매를 진단받았지만, 그 조짐은 16년 전인 67세부터 일기 속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었다. 저자는 첫 조짐 이후 어머니가 87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20년을 네 단계로 나눠 어머니의 또 다른 삶을 추적한다.

어머니는 초반에는 활발한 사회생활을 이어가지만, 점차 말과 행동에서 크고 작은 혼란이 발생한다. 단어 반복, 날짜 착오, 문장 빠뜨리기 등이 반복되면서 어머니의 자아는 점점 허물어진다.

하지만 저자는 "이 허물어짐은 무너짐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모양"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머니의 일기를 해석하려 들지 않고, '머뭇거리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곱씹어' 살펴본다.

책은 일기라는 '사적 기록'을 중심에 놓고, 이를 둘러싼 가족들의 여러 대응을 교차해 보여준다. 저자뿐만 아니라 차남, 딸, 며느리 등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어머니의 병세를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며, 치매가 단지 환자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치매에 관한 편견과 '치매는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다'는 통념을 부수는 데 집중한다. 그의 어머니는 일기에서 물건을 잃어 당황하는 자신을 나무라기도 하고, 말실수에 자책하면서도 "내일은 괜찮아지겠지"라는 기대를 품는다. 저자는 그 생생한 감정을 독자에게 전하며 치매를 단순히 '기억 상실'로만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책이 치매라는 병의 실체를 분석하기 위한 실용서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삶이 마무리되는 과정을 기록한 '서사'라고 강조한다. 치매 환자들은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도 염원과 후회 등 다양한 감정과 함께 인간다움을 마지막까지 간직한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조지혜 옮김. 328쪽.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