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산불 내면 처벌은 우리나라가 가장 약하다?

연합뉴스 2025-03-27 08:00:04

산불 실화자에 3년 이하 징역…일반 실화보다 처벌 높아

주요국보다 산불 처벌 낮지 않아…미연방 6개월 이하 징역

연기 피어오르는 주왕산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지난 주말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이 크게 번지면서 사망자까지 속출하자 산불 유발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산불 관련 기사의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법에서 정한 형량이 낮기 때문에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패가망신시킬 정도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들의 주장처럼 과연 산불 유발자에 대한 우리나라의 처벌 수위가 낮은지 주요 국가의 법정형과 비교해 확인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요국 형법이나 관련 법의 처벌 조항과 비교하면 산불 실화자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정형이 매우 낮다고 볼 수는 없다.

◇ 산불 실화자에 3년이하 징역…일반 실화보다 처벌↑

일단 실화, 즉, 실수로 불을 낸 경우라도 그 불이 산에서 발생했느냐에 따라 처벌 수준이 달라진다.

형법 제170조에서 과실로 타인의 건물, 기차, 전차, 자동차 등을 불태운 자에 대해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즉, 일반적인 실화자의 최대 형량은 1천500만원 벌금형이다.

산불 진화작업 벌이는 의용 소방대원

하지만 산불의 경우 산림보호법 제53조 제5항이 적용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고의로 산불을 낸 경우, 즉 산불 방화범인 경우 형량이 한층 높아진다. 방화 대상이 산림보호구역 또는 보호수이면 7년 이상∼15년 이하, 타인 소유의 산림이면 5년 이상∼10년 이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이마저도 과거에 형량의 상한이 없어 과도하다는 지적 때문에 현재와 같이 낮아진 것이다.

2016년 12월 개정 전 산림보호법은 타인 소유의 산림이나 산림보호구역, 보호수에 불을 지른 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했다.

경북 의성을 비롯한 남부 지방 산불의 경우 아직 방화 혐의는 발표된 바 없어 현재로선 실화에 따른 벌칙 조항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연방규정엔 산불 실화에 6개월 이하 징역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와 주(州)정부 차원에서 각각 산불 관련 규정이 있다.

연방 소유의 국유림에서 발생한 산불의 경우 '연방규정집(Code of Federal Regulations·CFR)'의 적용을 받는다.

이 CFR의 제36편(공원, 산림, 공공재산)에선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발화 물질이나 기타 물질을 부주의하게(carelessly) 또는 태만하게(negligently) 던지거나 놓는 행위', '불을 완전히 끄지 않고 방치한 행위', '허가받지 않고 나무, 덤불, 잔디 등을 태우는 행위' 등이 금지되고 이를 위반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이 부과된다.

서울 면적 14배 태운 캘리포니아 산불

하지만 미국은 주마다 산불 또는 실화에 대한 정의와 형량이 다르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산림에 '무모하게'(recklessly) 불을 냈을 경우 최대 3년형을 받는다. 이때의 '무모성'(recklessness)은 고의와 과실의 중간 영역에 해당한다.

오리건주도 '무모하게' 불을 내 타인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다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6천250달러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단, 과실이 없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화재라면 기소되지 않는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터 밸리에서 목장주가 말벌 둥지 입구를 막으려고 망치로 쇠말뚝을 내리치다가 그 불똥이 덤불로 옮겨붙어 대규모 산불이 발생한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화재로 인한 피해 규모가 45만9천123에이커(약 1천858㎢)로 당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화재 원인이 우발적이었다고 판단했고, 목장주는 기소되지 않았다.

◇ 일본은 벌금형…독일·프랑스는 징역형

일본의 경우 '삼림법' 제203조에서 실수로 산림에 불을 놓은 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단, 타인의 산림에 방화한 자는 2년 이상, 자신의 산림에 방화한 자는 6개월 이상∼7년 이하의 징역형이 부과된다.

산불 실화자에 대한 형량이 우리나라보다는 약한 편이다.

독일은 '형법' 제306d조에서 과실로 인한 화재로 숲이나 산림을 불태운 자는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다.

또한 제306f조에선 불이나 등불 또는 연소 중이거나 소화되지 않은 물건을 방기하거나 그 밖의 다른 방식으로 화재위험을 야기한 자는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이 처하게 했다.

일본 혼슈 서부 산불 확산

프랑스는 '형법' 제322조의5에서 법령에서 부과한 안전 또는 주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화재로 인해 타인의 재산을 의도하지 않게 파괴, 손상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만5천유로 이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때 화재가 타인 소유의 숲이나 삼림, 농장에서 발생했다면 형량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만유로 이하의 벌금으로 높아진다.

스웨덴의 경우 '형법'의 제13장 공공위험 범죄에 관한 조항에서 방화와 함께 실화도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방화에 대해 2년 이상∼8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하면서 과실 또는 부주의로 불을 냈을 경우 최대 6개월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경감하고 있다.

덴마크도 '형법'에서 비슷한 규정을 두고 있다. 제36장에서 화재로 생명 또는 건강에 대한 일반적 위험을 야기하거나 매우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경우 4개월 이상∼4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황폐해진 프랑스 지롱드주 랑디라 숲

단, 이런 일이 행위자의 과실로 인해 발생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감경된다.

결론적으로 주요국 형법이나 관련 법의 처벌 조항과 비교하면 산불 실화자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정형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특히 미국이 산불에 좀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미국에선 실화자에 대해 소방당국이 화재 진압 비용을 법적으로 청구할 수 있거나 법원이 이들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할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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