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이젠 땅 꺼지는 것까지 걱정해야 하나"

연합뉴스 2025-03-27 07:00:02

싱크홀 공포증…명일동 사고영상 유포되며 불안감 토로

"땅 살피고 지하철 공사구간서 더 조심스럽게 걷게 돼"

"운전 중이면 갓길 정차 뒤 차량서 빠져나오는 게 안전"

2024년 9월 부산 대형 싱크홀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김유진 인턴기자 오인균 인턴기자 = "아무리 헬멧을 쓰고 보호대를 차도 오토바이를 타다 보면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이젠 땅이 꺼지는 것까지 걱정해야 하나?"

서울 중구에서 배달 기사로 일하는 박모(26) 씨는 26일 이렇게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땅 꺼짐) 사고 이후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멀쩡하던 도로가 갑작스레 폭삭 내려앉으며 사망자가 발생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고 당시 영상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해당 영상에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손 쓸 틈도 없이 싱크홀로 빠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20대 직장인 서모 씨는 "블랙박스 사고 영상을 무방비 상태로 보고 경악했다"며 "체감상 싱크홀 사고 이후 평소보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이 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오토바이를 구매하려던 김대성(30) 씨는 "사고 이후 오토바이를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사고 당시) 앞서가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는 차체가 길고 커서 바퀴만 걸리고 튕겨 나갔지만, 오토바이는 불가항력적으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추락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오토바이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고 토로했다.

사고 현장 인근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 'sso***'는 "딱 스쿨버스 타는 지점이어서 2시간 정도만 늦었어도 학생들이 탄 버스가 다 같이 내려앉았을 것"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강동구 대명초 인근 대형 싱크홀

특히 생계를 위해 이륜차를 타야 하는 배달 기사들은 마음 졸이며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 명일동 사고 희생자인 오토바이 운전자도 부업으로 배달 일을 하던 중 변을 당했다.

배달 기사 박씨는 "도로 위에서 10시간 이상 보내는 배달 기사에겐 도로가 일터이자 생계 수단"이라며 "사고 전에 위험 신호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위험 지역을 사전에 경고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고의 원인으로 지하철 9호선 연장 및 상수도관 공사가 거론되면서 지하철역 인근에 거주하는 '역세권'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기도 했다.

경기 수원시 지하철 공사장 인근에 거주하는 김진혁(29) 씨는 "이번 사고가 지하철 공사 영향이라는 기사를 보고 걱정이 커졌다"면서 "도로를 지날 때도 괜히 바닥을 한 번 더 살펴보게 되고, 지하철 공사 구간에서는 더 조심스럽게 걷게 된다"고 밝혔다.

또다른 수원 주민 이정우(48) 씨는 "우리나라 부동산을 가장 좌지우지하는 것이 '역세권'인데, 이번 사고를 보면서 '집 주변에 지하철역이 생긴다고 해서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하철이 새로 뚫린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젠 한편으로 겁도 나고 걱정이 앞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한복판에 발생한 대형 땅꺼짐

싱크홀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적어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명일동 싱크홀 영상에는 사고 직후 맞은편 도로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싱크홀 옆을 지나가는 모습이 담겼다.

직장인 이유정(32) 씨는 "2·3차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어서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며 "영상을 보니 싱크홀 발견 직후 놀라서 머뭇대는 차량도 있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니 더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김모(30) 씨도 "내가 운전자였어도 너무 놀라서 지나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며 "빨리 지나가는 게 맞는지, 멈추는 게 맞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유튜브 이용자 'min***'도 "안전불감증 심각하네요"라고 적었고, 또 다른 이용자 'uyy***'도 "지나가자마자 추가 땅 꺼짐이 있었는데 맞은편 운전자도 천운이었다"고 남겼다.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 'Ass***'는 "운전하다가 갑자기 도로가 꺼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적었고, 또 다른 이용자 'Dom***'는 "싱크홀 사고 구역 인근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차주가 싱크홀 위치를 물으며 신난다는 듯이 구경 왔다고 말하는데 '뭐 하는 사람인가' 싶었다"고 썼다.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장인 조계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운전하다 갑자기 노란불이 켜졌을 때와 같이 대처하는 것이 좋다"며 "옆차선에 싱크홀이 나타났다면 그것을 정지선처럼 여겨 이미 이를 밟았다면 빠르게 지나가고, 그렇지 않다면 멈춰서서 갓길에 세운 뒤 차량을 빠져나오는 것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심은 도로를 포장해두기 때문에 땅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안 보이고, 현재 기술적으로도 이를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그에 따라 시민들도 경각심을 갖고 도로 균열 등 전조 증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대문구 싱크홀 복구 현장의 모습

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4∼2023년 전국 싱크홀 발생 건수는 2천85건이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429건·20.6%), 강원(270건·12.9%), 서울(216건·10.3%), 광주(182건·8.7%) 등 순으로 싱크홀이 많이 발생했다.

발생 원인은 '하수관 손상'(876건·42%)이 가장 많았으며, 그다음으로 다짐 불량(350건·16.8%)·상수관 손상(263건·12.6%)·기타(210건·10%) 등 순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해당 기간 싱크홀로 인한 사망자는 2명이었다.

2019년 12월 서울 영등포구에서 지하공공보도 건설공사 중 싱크홀이 발생해 작업 중이던 인부 1명이 추락해 사망했고, 2022년 7월 인천 부평구에서 고소 작업대를 이용해 건물 외벽 방수 작업 중이던 인부 1명이 싱크홀에 추락해 사망했다.

서울로만 보면 지반 침하 건수는 2021년 11건, 2022년 20건, 2023년 22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승용차가 통째로 빠지는 사고가 났고, 이어 종로5가역 인근과 강남구 역삼동 지하철 9호선 언주역 인근 도로 등에서 잇따라 싱크홀 사고가 발생했다.

winkit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