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앙투아네트 의자로 베르사유 궁전도 속인 佛장인들

연합뉴스 2025-03-27 00:01:01

18세기 의자 전문가·가구 공예 명장이 공모

갤러리·경매사·카타르왕족 깜빡 속아 넘어가

베르사유 궁전 내 거울의 방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자 등 18세기 왕실 가구를 위조해 베르사유 궁전 등을 속인 저명한 가구 전문가 등이 법정에 섰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18세기 가구 전문가 조르주 팔로와 유명 목공 장인 브뤼노 데누 등의 재판이 25일(현지시간) 퐁투아즈 법원에서 시작됐다.

골동품상 집안 출신인 팔로는 소르본대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기도 한 18세기 프랑스 의자 전문가로, 업계에서는 '의자의 아버지'라고 불린 인물이다.

데누 역시 1984년 장식 조각 부문에서 최고 장인으로 선정된 인물로 파리 가구 공예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가구 복원 공방을 운영했다.

두 사람은 2007∼2008년 앙투아네트 왕비와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뒤바리 부인의 응접실 등을 장식한 의자의 모조품을 만들어 고가에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가구 뼈대를 구입하거나 데누가 직접 자재를 가공한 뒤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찍히거나 긁힌 자국 등을 더해 인위적으로 '역사의 흔적'을 만들어냈다.

이후 도금공이나 은퇴한 실내 장식가를 고용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진품에서 떼온 라벨이나 가짜 낙관을 붙여 정품처럼 꾸민 뒤 팔로가 중개인을 통해 유명 갤러리에 판매를 제안했다.

검찰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챙긴 범죄 수익이 300만 유로(약 39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위험하지만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팔로는 수사 과정에서 데누가 뒤바리 부인의 정품 의자 한 쌍을 복원하던 시기 "장난삼아 똑같은 걸 만들어서 통과되는지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베르사유 궁전 외관

이들의 위조품은 너무 정교해서 경매사나 갤러리, 베르사유 궁전, 카타르 왕자까지 깜빡 속아 넘어갔다.

베르사유 궁전은 2009년 유서 깊은 고급 골동품 갤러리 크래메르(Kraemer)를 통해 뒤바리 부인의 가짜 의자 한 쌍을 84만 유로(약 10억원)에 구매했다. 2011년에도 소더비 경매를 통해 앙투아네트 왕비의 방에 있었다는 모조품 의자를 42만 유로(약 5억원)에 구입했다.

카타르 국왕의 형제 역시 앙투아네트 왕비의 벨베데르 파빌리온(베르사유 궁전 내 트리아농 정원 건물)에 있던 의자로 알고 한 쌍에 무려 200만 유로(약 26억원)를 지불했다. 이 의자들은 '왕비를 위해 만들어진 가장 비싼 가구'로 묘사되며 국보로까지 지정됐으나 결국 '짝퉁'으로 드러났다. 이 왕자는 사기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이후 크래메르를 통해 전액 환불받았다.

팔로는 수사 판사 앞에서 뒤바리 부인의 가짜 의자가 베르사유 궁전까지 입성하게 된 경위에 대해 "드루오(Drouot) 경매장의 유명 전문가는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 전문가는 이를 갤러리 크래메르에 팔았으며 크래메르도 다시 베르사유 궁전에 판매했다"면서 "말 그대로 우편물처럼 자연스럽게 통과한 셈"이라고 진술했다.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