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빠진 대러시아 제재 효과는…"러 경제 심각한 제약"

연합뉴스 2025-03-27 00:01:01

英이코노미스트 "유럽도 '카드' 있어…무시·위협시 꺼낼수도"

독일이 러시아 그림자 함대 소속으로 의심해 억류한 유조선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러시아가 흑해 휴전 선행조건으로 농업 관련 금융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미국이 이에 협력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제재 공동 전선'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5일(현지시간)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더라도 유럽은 자체 제재 유지로 러시아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현재 서방 제재 가운데 대러시아 제재는 2만5천건에 육박, 그다음 6개국(이란, 시리아, 북한, 벨라루스, 미얀마,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올해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직전까지 미국은 러시아에 약 6천500건 제재를 가했다. 캐나다와 스위스, 유럽연합(EU), 프랑스, 영국, 호주, 일본이 뒤를 잇는다. 유럽의 총 제재 건수는 미국보다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가 바라는 제재 해제는 유럽에선 논의부터 금기시된다며 유럽이 제재를 이어가면 러시아의 무역과 결제 시스템 접근, 외국인 투자가 모두 심각한 수준으로 제한된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제재를 끝내고 3년 새 90% 줄었던 대러시아 상품 무역을 되살린다고 해도 침공 직전 교역 규모 350억달러(51조원)는 EU의 대러시아 무역 2천580억유로(408조원)보다 훨씬 작다.

천연가스 시장에서 2026년이면 과잉 공급이 예상되는 데다 러시아의 유럽행 가스관을 폐쇄한 것은 푸틴 대통령 본인이었던 만큼 러시아가 수출 재개를 바란다고 해서 유럽이 다시 구매하게 될는지는 알 수 없다.

러시아가 전쟁 전 수입한 첨단 기계 등 고가 품목 상당량이 유럽산이었다. 민수·군수 양용 품목 대부분 미국산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다른 제재를 해제하더라도 무기 부품 수출 제재는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러시아의 결제 시스템 접근 제한을 해제하면 러시아로선 숨통이 트일 수 있으나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이 대부분 유럽에 있고 러시아 은행 대다수는 벨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접근이 여전히 제한될 수 있다. 유럽 제재가 남아 있으면 미국 은행들로서도 러시아 관련 거래의 결제 승인을 주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루블화 가치가 20% 오르는 등 러시아 경제 반등에 대한 기대가 커졌으나 외국 기업들은 러시아가 합의를 깨고 제재가 복구될 가능성, 평판 손상, 주주 반발 등으로 여전히 투자를 경계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관 앞 시위자

유럽 규제 당국이 외국 은행에 '러시아 연계 거래가 유럽 사업에 영향을 주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경고하거나, 러시아산 석유를 운송했던 유조선의 유럽 입항을 금지하는 등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은 더 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이 이같은 방식을 고려할 정도라면 미국이 제시할 휴전안이 아주 형편없는 수준일 것이라고 봤다. 유럽이 제재를 추가로 가하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유럽 강경파가 본인의 거래를 망치려 한다고 생각하고 반격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외교 라인은 아직 유럽과 대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유럽 소식통은 이런 미국의 태도에 "완전히 어리석다"고 평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에 유럽은 언제나 미국보다 더 중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럽은 꽤 괜찮은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무시당하고 위협당하면 유럽이 이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