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속출·헬기추락…경북북부 산불현장 최악 상황(종합)

연합뉴스 2025-03-26 18:00:08

닷새째 더딘 진화에 초토화, 피해 규모 산출 어려워…사망자도 18명까지 늘어

미흡한 지자체 대처에 '아비규환 대피행렬'…안동 하회마을 산불 피해 가시권

화마가 휩쓸고 간 고운사

(안동·의성·영덕=연합뉴스) 최수호 김선형 나보배 기자 = 닷새째 확산 중인 경북 의성 산불이 강풍을 타고 북동부권 4개 시·군으로 계속해서 번지면서 현장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산불을 당국이 막지 못하면서 북동부권 산불 현장은 이제 피해 규모를 산출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초토화됐다.

진화 헬기 추락 사고나 산불 확산에 따른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26일 산림 당국은 일출 시각인 오전 6시 30분을 전후해 의성, 안동, 영양, 청송, 영덕 등에 진화 헬기 수 십 대와 인력 4천918명, 진화 장비 558대를 투입해 주불을 끄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진화 작업은 주요 시설과 인구 밀집 지역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순간 최대 초속 11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고 낮 최고 기온도 20도를 웃도는 기상 악조건이 닷새째 이어지면서 진화 작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낮 12시 51분께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한 야산에서 진화 작업에 투입된 헬기 1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진화 작업에 핵심 장비인 헬기 운항이 잠정 중단됐다가 오후 3시 30분께 재개됐다.

추락 헬기는 강원도 인제군 소속의 담수 용량 1천200ℓ의 S-76 기종으로, 헬기를 몰던 기장 A(73)씨는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사고 현장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는 민가도 있어 하마터면 추가 인명·재산 피해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날 오후 6시 기준 진화율이 68%에 머물렀던 의성 산불 진화작업은 기상 악조건과 돌발 사고 등이 겹치면서 계속해서 더디게 진행되는 까닭에 1만5천185ha로 추정됐던 산불영향 구역이 현재 어느 정도까지 늘었는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산림청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산불영향 구역을 추산하기 위해 항공기로 정찰했으나 영상자료가 많아 당장 분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라진 의성 산불 헬기 형체

산불이 '동진'하는 경로를 따라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 등 인명피해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전날 오후부터 현재까지 영양군, 청송군, 영덕군, 안동시 등 4곳에서 발견된 사망자는 모두 18명이다.

사망자들은 화마가 휩쓸고 간 야산 주변 도로와 주택 마당 등에서 발견됐으며 이 가운데는 일가족도 포함됐다.

영덕군 사망자 일부는 실버타운 입소자로 대피 도중 산불확산으로 타고 있던 차량이 폭발하면서 변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다수 사망자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산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미처 피하지 못해 질식하는 등 피해를 본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산불 피해가 난 지자체들이 주민 대다수가 신속한 대처가 불가능한 고령자임을 간과하고 사전 대처에 소홀했던 탓에 산불 피해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지자체들이 산불이 옮겨붙기 직전 체계 없는 혼란스러운 재난·대피 문자를 발송한 까닭에 지역마다 '대피행렬'이 이어지는 등 혼란상도 연출됐다.

지난 25일 영덕군 7번 국도는 피난에 나선 차량 행렬에 한순간 꽉 막혀버렸다.

한 영덕읍 주민은 "꽉 막힌 차량 사이로 불덩이가 비처럼 내려 자동차에 불이 붙었다"며 "운전자들이 불붙은 차에서 간신히 빠져나오고, 아비규환이었다"라고 말했다.

산불이 근접하자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영덕 주민 104명은 석리항·축산항·경정3리항 방파제 등에 고립됐다가 울진해경에 구조됐다.

청송군 주왕산 국립공원 인근에 거주하는 60대 주민은 "화염이 번지는데도 어느 방향이 안전하다거나 어느 방향이 위험하다는 안내가 없었다"라며 "그저 빨리 대피하라고만 하니 밖으로 나왔는데, 명확하고 적극적인 지시가 없어서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산불에 지친 주민들

현재 산불이 번진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5개 시·군에는 주민 2만3천491명이 실내체육관 등으로 대피한 상황이다.

또 현재까지 각종 시설 257곳에서 산불 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이밖에 고속도로는 의성∼대천 분기점 양방향, 동상주∼영동 부기점 양방향 등이 통제되고 있다.

또 의성 산불이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 코앞까지 진출한 상황이라 당국·주민들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소방 당국은 마을 곳곳 한옥과 낙동강 변 소나무 숲에서 두 시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물과 방염수를 뿌리며 만약의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권영길 하회마을 이장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대피해야 한다고 재차 권고하고 있다"며 "산불 막으려면 넓은 면적으로 비가 와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하소연했다.

산림 당국은 "지역 주민 생명과 재산 보호하기 위해 진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픽] 경북 북부 산불 발생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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