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EU는 보복관세…멕시코는 협조적
인도·베트남, 관세 인하 추진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동맹과 비동맹을 가리지 않고 관세 무기를 휘두르면서 우방국들이 이에 맞대응하거나 굴복하는 선택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국에 큰 레버리지(영향력)를 가진 캐나다·유럽연합(EU)은 맞대응을 선택한 반면 멕시코 등은 관세를 수용하며 최대한 협조하는 모양새라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이 내달 2일 상호 관세 발표를 예고한 가운데 주요 대상국으로 거론되는 인도·베트남 등은 관세 인하를 서두르고 있다.
◇ 캐나다·EU는 보복관세…멕시코는 협조전략
캐나다와 EU는 미국에 보복 관세를 발표하는 등 맞대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지난달 4일부터 캐나다·멕시코에 대해 '25% 전면 관세'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가 한 달 유예 기간을 뒀고, 이달 4일부터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적용 대상이 아닌 경우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1단계 대응 조치로 300억 캐나다달러(약 30조원)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당초 예고했던 1천250억 캐나다달러(약 125조원) 규모의 추가 보복 관세의 시행은 4월 2일로 연기한 상태다.
미국이 지난 12일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25% 관세 시행에 들어가자 캐나다는 13일 미국산 철강·알루미늄 등 298억 캐나다달러(약 30조원) 규모의 미국 상품에 대한 보복 관세 시행에 들어가기도 했다.
EU는 2단계에 걸쳐 총 260억 유로(약 41조원) 상당의 미국산 상품에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다만 1단계 조치로 버번위스키 등 80억 유로(약 12조원) 상당의 미국산에 최고 50%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는데, 미국이 EU산 술에 200% 관세를 매기겠다고 재반격하자 시행을 연기하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WSJ은 캐나다·EU는 미국산 상품의 주요 수입국이며 캐나다는 미국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인 만큼 어느 정도 협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EU는 시장 규모가 큰 만큼 관세를 통해 미국 기업들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주류 관세를 둘러싼 미국·EU의 신경전, 전기요금 할증을 둘러싼 미국·캐나다의 갈등에서 알 수 있듯이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방의 보복 관세에 더 강한 관세 무기를 꺼내 든다는 측면에서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멕시코 등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며 합의점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레버리지가 부족한 국가들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관세를 수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다는 게 WSJ 해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한 명분은 펜타닐 마약 유입과 불법 이민을 내세우는 만큼, 멕시코는 이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펜타닐과 불법 이민을 선제 차단하기 위해 멕시코 군 병력 1만명을 국경에 투입하겠다며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다만 WSJ는 아직 어느 전략이 더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인도·베트남 선제적 인하 추진
미국이 상호 관세 부과가 유력한 대상국으로 꼽히는 인도·베트남 등은 관세 인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25일 복수의 익명 당국자를 인용해 인도가 양국의 1단계 무역합의 논의에서 미국산 수입액의 55%인 230억 달러(약 33조원) 정도에 대해 관세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 최대 규모다.
이들 수입품에는 현재 5∼30% 관세가 적용 중인데, 관세를 상당폭 내리거나 아예 없앨 준비도 되어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무역 상대국들에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상호 관세 시행에 나설 경우 인도 측은 대미 수출 가운데 660억 달러(약 96조원) 정도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는 게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인도는 미국을 상대로 연간 450억 달러(약 65조원) 정도의 무역흑자를 기록 중이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인도를 "무역에서 매우 큰 악당"이라 부르며 관세를 통해 불균형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해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베트남 재무부가 미국의 상호관세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자동차·목재·농산물 등에 대한 우대 관세 인하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일부 자동차에 대한 관세는 기존 45∼64%에서 32%로, LNG에 대한 관세는 5%에서 2%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될 상호 관세는 이른바 '더티 15'(Dirty 15) 국가에 초점을 맞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상호 관세와 관련해 '더티 15'를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국가명은 밝히지 않은 바 있다.
대상국은 지난달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미국과 무역 불균형국'으로 관보에 게재한 리스트와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리스트에는 주요 20개국(G20), 유럽연합, 호주, 브라질, 캐나다, 중국, 인도, 일본, 멕시코, 러시아, 베트남 등과 함께 한국이 포함돼 있다고 WSJ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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