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약일까 독일까…공매도의 귀환

연합뉴스 2025-03-26 08:00:07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주식시장의 공매도(空賣渡·Short selling)는 말 그대로 '비어있는 매도'라는 뜻이니 소유하지 않은 증권을 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가진 물건을 팔거나 아니면 매입해 소유한 뒤에 매도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공매도는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나중에 주식을 사서 갚는 투자 기법이다. 특정 종목의 주가가 앞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현재 주가와 미래 주가의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거래다.

코스피·코스닥 지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는 31일부터 국내 주식시장에서 그동안 금지됐던 공매도가 재개된다. 불법적인 무차입 공매도를 근절하고자 2023년 11월 전면 금지된 이후 약 17개월 만에 다시 허용되는 것이다. 과거 대형 경제위기가 터지고 투자심리가 경색됐던 시기에도 공매도가 금지됐다가 재개됐던 적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10월, 유럽 재정위기 때인 2011년 8월,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3월 등 3차례다. 2021년 5월 코스피200, 코스닥150지수를 구성하는 종목의 공매도가 허용됐지만, 개인과 기관에 대한 규제가 달라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일자 2023년 11월에 전면 금지됐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무차입 공매도를 방지할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매도 투자 때 개인과 기관의 상환기간과 담보 비율을 똑같게 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해왔다. 대형 투자은행(IB)들을 조사해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NSDS 불법 공매도 적출 시연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주식시장에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일각에선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공매도 재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며, 국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이탈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돌아오게 할 유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공매도가 주가의 거품을 제거하고 기업가치에 적정한 주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며 그로 인해 시장의 효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설명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인 설명에 불과할 뿐 '동학개미'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공매도 주문이 매도 압력을 높여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시장의 변동성도 커질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공매도 투자 경험이 거의 없는 개미들이 기관처럼 공매도 기법을 잘 활용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공매도 허용 여부가 주가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며 공매도는 가격에 대해 중립적인 거래 수단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공매도가 전면 금지됐던 작년 한 해 동안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각각 10.1%, 22.8% 하락했듯이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주가가 오르거나 공매도를 허용하면 주가가 내리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시장에서 주가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기업 정보와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판단이며 공매도는 그 투자의사를 집행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픽] 역대 공매도 재개 후 코스피·코스닥 등락률

그간 외국인과 기관에 휘둘려온 우리 증시의 역사를 감안하면 개미들의 걱정과 우려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제도적 장치를 계속 외면하며 외국인 투자자금이 돌아오기를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정한 규제와 불법 행위 적발 시스템을 갖췄으니 당국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제도 운용에 주력하고 투자자들이 예측 가능한 제도의 틀 속에서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라 안팎으로 혼란과 위협요인이 산적해 있고 장기 저성장 우려로 상장 기업들의 수익성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금융시장만이라도 안정을 지켜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 돼주길 기대한다.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