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대화방서 '유럽 험담'…유럽 "충격적"

연합뉴스 2025-03-26 00:00:23

美부통령·국방 "혐오, 한심"…후티 공격비용도 "유럽에 물리자"

"미국이 얻는 이점, 유럽의 측면 지원 무시"

왼쪽부터 왈츠 보좌관, 밴스 부통령, 헤그세스 국방장관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 수뇌부가 채팅방에서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내용이 실수로 유출되면서 유럽에서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 언론을 통해 보도된 채팅방의 대화는 유럽으로선 자못 모욕적인 내용이었다.

J.D. 밴스 부통령은 예멘 반군 후티에 대한 작전을 거론하며 "우리가 실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에즈를 통한 미국 무역은 3%에 불과하다. 유럽은 40%다"라고 말했다. 후티의 위협으로 유럽이 더 큰 위험에 처했지만 정작 공격은 미국에 떠넘긴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잠시 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우리가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가자. 나는 유럽을 또 구제하는 것이 싫을 뿐"이라고 보냈다.

3분 뒤 헤그세스 장관은 "부통령님, 유럽의 무임승차에 대한 당신의 혐오에 공감한다. 참 한심하다(pathetic)"고 답했다. 이어 "하지만 마이크(왈츠 국가안보보좌관)가 옳다. 이걸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다. 아무도 우리 근처에도 못 간다"고 보냈다.

왈츠 보좌관은 무역에 대한 수치와 유럽 해군의 제한된 능력에 대한 글을 길게 쓰고 나서 "(트럼프) 대통령 요청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관련 비용을 집계해 유럽에 부과할지 국방부, 국무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올렸다. 이번 작전 비용을 유럽에 청구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5일 이 대화가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혐오가 얼마나 깊은지 드러낸다고 지적했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동맹국들을 '업신여긴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짚었다. 이란 견제 등 이같은 공습에서 미국이 얻는 이점은 뒤로 뺀 채 거래적 태도로 일관한 데다 유럽의 안보 노력은 무시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후티 공습은 해상 무역 보호와 이란에 대한 견제에 대한 미 행정부의 정책과 훨씬 관련됐는데 밴스 부통령은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유럽의 무임승차론 측면을 밀어붙이기로 한 듯하다"고 꼬집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대화 참여자들은 영국이 예멘 상공에 미국 전투기를 띄우도록 공중급유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 영국과 프랑스, 다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이 홍해에 군함을 보내 상선을 호위하고 후티 드론과 미사일을 격추한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고위 외교관들은 FT에 밴스 부통령이 그동안 유럽을 향한 큰 적대감을 보였지만 유럽을 미국이 지원하는 일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보게 된 것은 여전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한 EU 외교관은 "(공습의 이점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왜곡됐는지 놀랍다"고 말했고, 또 다른 외교관은 "제정신이 아니다. 놀랍다"고 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언론인 재닛 데일리는 텔레그래프 칼럼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끝났다. 미국은 서방 동맹, 자유로운 세계의 리더가 되기를 그만뒀다"며 "그게 이 유치한 대화의 가장 명확하고 중요한 메시지"라고 썼다.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