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과 두드림으로 기억한 '고래사냥'…반구대 암각화 탁본 공개

연합뉴스 2025-03-26 00:00:17

동국대 박물관 '보묵천향' 특별전…1972년 3월 작업한 탁본 첫선

반구대 암각화 탁본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동국대 조사팀이 12월 25일 무렵에 천전리 암각화와 하류 계곡 조사를 할 텐데 참관하고 싶은 분은 같이 가세요."(문명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책 중에서)

1971년 당시 젊은 연구자였던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제안했다.

그해 10월 열린 역사학회 월례 발표회에서 '울산 반구동 서석, 천전리 암각화의 특징과 성격'을 주제로 한 발표를 마치고 토론하던 때였다.

문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 조사단과 동행한 사람은 김정배(현 고려대 명예교수)·이융조(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교수 두 명이었다.

개막식 참석한 문명대 명예교수

30대 초반의 이들 세 사람은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 아침 배를 타고 나섰다.

훗날 문 교수가 '반질반질 윤기 나는 암벽'이라 회상한 그곳에는 춤추는 사람과 바다거북, 새끼를 등에 태운 고래 등이 있었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세기의 발견' 이후 반구대 암각화를 먹으로 떠낸 탁본(拓本)이 반세기 만에 공개된다. 조사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탁본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동국대 박물관은 반구대 암각화 탁본을 포함해 탁본 13점을 소개하는 특별전 '보묵천향(寶墨天香)―보배로운 먹, 하늘의 향기'를 연다고 25일 밝혔다.

석수동 마애종 탁본

1963년 개관 이후 소장해 온 주요 탁본을 선보이는 자리다.

박물관 관계자는 "그동안 조사·연구했던 다양한 탁본을 중심으로 동국대 박물관의 학술 연구 역사를 되짚을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시의 핵심은 역시 반구대 암각화 탁본이다.

문명대 교수가 쓴 '울산 반구대 암각화' 책에 따르면 1971년 12월 암각화를 발견했을 당시 조사단은 현장 사진을 찍고 건탁(乾拓)을 진행했다.

건탁은 물을 쓰지 않고 고형묵(固形墨)을 종이 위에 문질러 파이지 않은 부분에 먹이 묻게 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번에 공개하는 유물은 1972년 3월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이 뜬 탁본이다.

동국대 박물관 '보묵천향' 특별전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 등 다양한 동물 그림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지금으로부터 53년 전 조사단이 섬세하게 먹을 두드린 흔적이 엿보인다.

올해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의미도 크다.

박물관 측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이라며 "발견 당시 탁본을 통해 선사시대 생활상과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흑과 백, 두드림으로 완성한 다양한 작품도 소개된다.

탁본 선보이는 '보묵천향' 특별전 개막

거대한 바위 면에 새겨진 범종인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석수동마애종' 탁본과 조선 경종(재위 1720∼1724)이 묻힌 의릉 표석 탁본 등을 볼 수 있다.

종, 탑, 비석 등에 새겨진 조각과 문양을 탁본한 유물도 선보인다.

해외에 있는 통일신라 범종의 탁본, 개성 현화사비 탁본, 삼막산 동종 탁본 등도 함께 전시해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전한다.

전시는 5월 9일까지.

동국대 박물관 '보묵천향' 특별전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