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천 장의 블라우스를 만들기 위해'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두 로즈는, 빵과 장미 둘 다 원했습니다. 그래서 둘은 남자들만 있는 노동조합에 최초로 가입했고 그때부터 3월 8일은, 전혀 새로운 세계를 위한 날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여성운동가 세레나 발리스타가 글을 쓰고,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소니아 마리아 루체 포센티니가 그림을 그린 '천 장의 블라우스를 만들기 위해'(이온서가)는 잊힌 여성 노동운동사의 기억을 되살린 그림책이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빵과 장미를 선물하는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을 찾아 나선다.
책은 1911년 3월 25일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발생한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단 18분 만에 129명이 여성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참사로, 희생자 대부분이 이탈리아와 동유럽 출신의 젊은 여성 이민자들이었다.
탈출구가 막힌 불길 속에서 창문으로 몸을 던져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끔찍한 비극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고, 이후 여성 노동운동의 대전환을 이끈 촉매가 됐다.
발리스타는 이 사건을 단순한 '역사적 재현'이 아니라 '기억의 복원'으로 풀어낸다. 여성 노동자들이 만들어야 했던 한 벌의 블라우스가 화재 목격자가 돼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연대, 비극을 증언한다.
실존 인물인 '로즈'라는 이름의 두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도 인상 깊다. 동명인 두 사람은 먼 타국에서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어주었고,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결정적 증언에도 함께 앞장섰다. 1908년 3월 8일 남성 중심의 노동조합에 여성으로서 최초로 가입해 목소리를 낸 이들의 용기는 여성 노동운동의 시발점으로 기록돼 100년이 넘도록 기념되고 있다.
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포센티니의 그림도 흑백의 강렬한 명암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화려함보다 절제된 선으로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붙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픽 노블'과 '일러스트북'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을 앞세운 책은 최근 아동도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2025년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대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김지우 옮김.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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