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시기인데…그린란드, 美고위급 방문 예고에 발끈(종합)

연합뉴스 2025-03-25 00:00:28

美부통령 부인·안보보좌관 등 27일 방문…에너지부 장관도 동행

그린란드, 연립정부 협상·지방선거 목전…덴마크도 "심각한 사안" 비판

마이크 왈츠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서울·브뤼셀=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정빛나 특파원 = 미국 고위급 대표단이 이번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병합' 의지를 노골화한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방문한다.

이번 방문이 그린란드의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린란드와 덴마크 모두 일제히 미국을 비판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백악관은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번 주 J.D. 밴스 부통령 부인 우샤 밴스 여사와 함께 그린란드를 찾는다고 밝혔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도 그린란드 방문에 동행한다.

이들은 사흘간 일정으로 그린란드의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고 개 썰매 대회를 참관할 예정이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편입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고위급 대표단"이라고 이번 방문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방문에 대해 브라이언 휴즈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북극 지방의 안보적 중요성을 고려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이들이 그린란드 북부의 미군 기지를 방문한다며 "그린란드의 자결권을 존중하고 경제적 협력을 강화할 파트너십을 구축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밴스 여사도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을 통해 "양국의 오랜 상호 존중과 협력의 역사를 자축하고 앞으로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하려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정치권은 일제히 반발했다.

그린란드는 지난 11일 총선을 치른 뒤 현재 새 연립정부 구성이 논의되고 있다. 내달 1일에는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옌스-프레데리크 니엘센 민주당 대표는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이 우리의 정부 구성 협상이 한창이며 지방선거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 시기에 그린란드를 방문하겠다는 것은 그린란드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방증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가 연정 구성을 서두르는 등 그것(미국 대표단 방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미국의) 압박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퇴임하는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도 이번 방문이 "매우 공격적"이라고 표현하면서 "국가안보보좌관이 그린란드에 올 일이 뭐가 있느냐. 우리에게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새 연정 구성이 되기 전까지는 공식적 회동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분명하게 전달했다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그린란드 제2의 도시인 시시미우트 시장인 말리크 베르텔센은 "미 대표단이 만나자고 접촉해 왔지만, 선거 운동이 한장이라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이메일 성명에서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그린란드 편입과 관련한) 공식적 발언과 분리해 보기 어렵다"고 입장을 냈다. '사적' 방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프레데릭센 총리는 그린란드 현안에 미국 측과 협력할 의향이 있음을 재확인하면서도 "협력은 주권의 기본적 가치와 국가와 국민 간 존중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당국은 미국 대표단 방문을 앞두고 안전 강화를 명분으로 그린란드에 경찰관 40여명과 경찰견 두 마리를 급파했다고 덴마크 DR 방송은 보도했다.

덴마크가 속한 유럽연합(EU)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덴마크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함께 연대할 것"이라며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전성, 유엔 헌장은 보편적인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승리 이후 국가 안보와 광물 활용 등을 이유로 그린란드 편입을 주장해 왔다.

열흘 전인 지난 13일에는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 면전에서 그린란드 병합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나토를 영토확장의 도구로 삼을 수도 있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지난 1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도 그린란드를 방문해 논란을 빚었다. 트럼프 주니어 측은 당시 방문이 사적 방문이라고 주장했으나 일부 주민들에게 마가(MAGA·트럼프 대선운동 구호)가 적힌 모자를 나눠주는 등 미국 편입을 선호하는 것처럼 상황이 연출됐다는 비판이 현지에서 제기됐다.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