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원스' 번역 황석희 "원작의 위트있는 부분 살리려 노력"

연합뉴스 2025-03-25 00:00:17

동명 영화 이어 뮤지컬도 번역…모든 곡 초연과 다르게 새로 옮겨

"원작 정서 깊게 옮기려 노력한 번역가로 기억해줬으면"

뮤지컬 '원스'의 황석희 번역가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영문 대본을 받았는데 위트를 살릴 만한 구석이 많았어요. 유머러스한 부분이 살아있다는 점이 초연과 재연의 가장 큰 차이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뮤지컬 '원스'의 대본과 곡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 황석희가 24일 기자들과 만나 작품 번역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울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 중인 '원스'는 2007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거리의 기타리스트와 꽃을 파는 이민자들의 만남을 음악으로 그린 작품이다. 음악·안무 등을 원작 뮤지컬과 동일하게 가져오는 레플리카 형식으로 제작되는 것은 2014년 초연한 이후 11년 만이다.

황석희는 이번에 곡 가사를 완전히 새롭게 번역해 초연 때와는 다른 가사를 들려준다. 배우들이 초연 때의 가사로 연습하고 제작자도 초연 번역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지만, 황석희는 모든 곡을 새로 번역하기를 고집했다. 이는 최대한 원작 의도와 정서에 가깝게 번역해야 한다는 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뮤지컬 '원스' 속 한 장면

황석희는 이렇게 번역한 곡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곡이 '라그랑 로드'(ragland road)라고 밝혔다. 그는 원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그대로 옮기지 않았지만, 원문의 뉘앙스를 녹여 뜻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원스'에서 주인공 가이의 아버지 다(DA) 역을 맡은 배우 이정열을 향한 팬심에 그가 멋있게 발음하는 음절 위주로 번역했다는 일화도 전했다.

그는 "이정열 배우의 1집과 2집 노래 다 외울 정도로 팬이었다"며 "(특정) 음을 할 때 듬직하고 구수한 바이브레이션이 나온다. 그 발음이 한국에서 가장 멋있다. 그 음절이 드문드문 등장한다. 제가 듣고 싶었다"고 전했다.

뮤지컬 '원스' 속 한 장면

황석희는 원작 영화의 번역도 맡은 인연이 있다.

그는 "영화에서 소모적으로 쓰이는 캐릭터들에 뮤지컬은 서사를 부여하고 그들 간의 시너지 같은 것도 표현해 훨씬 풍부한 작품"이라고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를 설명했다.

황석희는 "2000년대 영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지점이 촌스러울 수 있지만, 포크 음악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며 포크 뮤지션을 그린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대사를 인용했다.

"(영화에서) 낡아지지도 않고 새로워지지도 않는 것, 그게 포크라고 해요. '원스'의 정수가 아이리시(아일랜드의) 포크이기 때문에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작품 내에서 오케스트라 없이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한 점이 특징이다. 배우들은 첼로, 바이올린 등의 악기를 들고 무대를 오가며 춤도 선보인다.

황석희 번역가는 "'부딪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들이) 격하게 뛰어다니는 작품"이라며 "무대에서는 연습실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정돈된 움직임들이지만, 에너지가 훨씬 크다"고 소개했다.

뮤지컬 '원스' 속 한 장면

'원스'가 기타 음악을 주로 들려준다는 점도 황석희가 '원스'를 친숙하게 느낀 이유 중 하나다.

황석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고 20대에는 밴드를 10년 했다. 밴드를 그만두고서는 버스킹(거리공연)을 4년 했다"며 "거리에서 공연을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익숙하고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황석희는 하고 싶었던 음악 활동을 그만두고 번역 일을 하며 현실의 삶을 꾸려갔다. '원스'의 주인공 가이가 하고 싶은 일과 현실 사이에 갈등을 겪은 것과 비슷한 지점이다.

그는 "제가 3년 뒤면 쉰인데, 이만큼 살아보니 인생이 의도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느낀다"면서 "내 길이 막혀 있으면 흘러가는 대로 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꿈을 꾸든 어떤 일을 하든 한쪽 발은 땅에 대고 있어야 한다. 두 개 다 떼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꿈을 꾸는 이들에게 조언도 남겼다.

뮤지컬 '원스' 연습실 공개 행사

영화와 공연을 오가며 활발하게 번역 작업을 하는 황석희가 기억되고 싶은 번역가의 모습은 무엇일까.

"저는 원작자의 가사와 위트, 원작자가 '이 단어로 웃기려고 했다, 깊은 것을 담으려고 했다'는 점까지 전달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관객이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한 것은 원작자가 의도한 뉘앙스나 정서들이 많이 녹아있겠다고 기대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ncounter2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