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가야리 유적서 배수로 이어 집수지도…가야 문화권 최초
'잊힌 왕국' 가야 문자 자료 발견 기대되지만…예산·인력 부족
(함안=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아라가야의 왕성이 들어섰던 것으로 추정되는 김해 함안 가야리 유적에서 물을 저장해 사용한 흔적이 확인됐다.
가야 문화권에서는 처음 실체를 드러낸 것으로, 가야의 맹주였던 아라가야의 옛 모습을 밝혀낼 '타임캡슐'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함안 가야리 유적 일대를 조사한 결과, 물을 모아서 가두는 역할을 하는 집수(集水) 시설 터를 찾았다고 24일 밝혔다.
오춘영 소장은 이날 발굴 조사 현장을 공개하며 "지난해 배수로가 확인된 데 이어 약 2주 전에 집수지까지 확인됐다"며 "가야 문화권 왕성 유적 최초"라고 설명했다.
물을 모으기 위한 집수지는 성안에서 꼭 필요한 시설로 꼽힌다.
이번에 발견된 집수지는 원형에 가까우며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조사된 부분의 지름이 9.7ｍ, 깊이는 1.9ｍ 이상으로 보인다.
취재진에 공개된 집수지는 한눈에 봐도 깊이가 상당한 편이었다.
아래쪽에는 모양이 반듯한 돌을 차곡차곡 쌓았지만, 위쪽에는 모양이 고르지 않은 돌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김형철 학예연구사는 "상·하부 두 차례에 걸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아래는 5세기 후반 중에서 이른 편, 위쪽은 5세기 말 정도로 시차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집수지의 물을 어떻게 모으고 사용했는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김 연구사는 "아직 조사되지 않은 부분"이라며 "조선시대 물길이 흐른 흔적 등을 고려하면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집수지 아래에 무엇이 잠들어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보통 집수시설 주변에는 동·식물 유체를 비롯해 각종 목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양호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연구 가치가 크다.
무엇보다 가장 기대하는 유물은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다.
목간은 문헌 기록이 많지 않았던 고대사를 밝힐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야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함안 서북쪽에 있는 사적 '함안 성산산성'에서 국내에서 출토된 목간의 절반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목간이 나온 적 있으나, 모두 신라의 목간으로 확인됐다.
오 소장은 "집수지는 아라가야의 타임캡슐"이라며 "문헌이나 역사적 자료가 부족한 가야 역사를 (집수지) 안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라가야의 흔적을 찾기 위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아라가야는 함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정치체로, 560년경 신라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고유한 문화와 체계를 갖췄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소는 2023년부터 가야리 유적의 일부에 해당하는 약 8만3천600㎡ 규모를 발굴 조사하며 성안의 생활시설을 확인했고 좁게 움푹 패어 들어간 곡간지 구간을 조사 중이다.
그러나 함안 지역 가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가야리 유적의 경우 전체 면적(23만1천497㎡) 대비 일부만 조사가 진행 중이나, 한 해 예산은 1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집수지 조사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가야리 유적을 담당하는 인력은 연구사 1명을 포함해 총 7명뿐"이라며 "앞으로 조사·연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인력이 배 이상 필요하다"고 말했다.
yes@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