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재판관 "韓, 임명거부 의사 미리 밝혀 헌법·법률 위반"
정계선만 "파면 정당화할 사유" 인정…파면은 6인 찬성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황윤기 이도흔 기자 =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만 공직에서 파면할 만큼 중대한 잘못은 아니라고 24일 밝혔다.
헌재가 공개한 결정문에 따르면 재판관 8인 중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정계선 재판관 등 5명은 한 총리가 헌법 66조와 111조, 국가공무원법 56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헌법 111조는 '헌법재판관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한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무를, 국가공무원법 56조는 공무원의 법령 준수 및 성실 의무를 규정한 조항이다.
앞서 국회는 조한창·정계선·마은혁 후보자에 대한 재판관 선출안을 지난해 12월 26일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권이 없다고 반발하며 인사청문회에 참가하지 않았고, 본회의 표결도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불참한 채 진행됐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 총리는 이 같은 점을 바탕으로 '여야 합의가 없다'며 세 사람에 대한 임명을 보류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헌법 위반이라며 27일 탄핵 소추했다.
재판관 5인은 헌법 111조가 대통령에게 재판관을 임명할 구체적인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 후보자가 법정 자격을 갖추고 선출 절차에 국회법 등을 위반한 하자가 없는 이상 대통령은 이를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한 총리가 재판관 선출안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해 12월 26일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하실 때까지 저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습니다"라고 발언한 점을 재판관들은 문제 삼았다.
재판관들은 이를 "거부 의사를 미리 종국적으로 표시함으로써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하는 헌법상 구체적 작위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헌재가 탄핵소추를 인용하려면 단순한 위법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여야 한다.
이를 '중대성 요건'이라고 하는데, 위헌·위법을 인정한 5명 중 정계선 재판관을 제외한 4인은 국회 탄핵소추 사유가 이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한 총리에게 '헌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한 논란도 있었으므로 헌법·법률 위반이 파면을 정당화할 수준은 아니라며 기각 의견을 냈다.
재판관 4인은 "탄핵심판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국정 최고책임자의 공백 상태가 언제 해소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타격이 걷잡을 수 없이 극대화되었을 것"이라면서도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파면 결정은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더욱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정계선 재판관만 유일하게 중대성 요건도 충족했다고 판단해 인용 의견을 냈다. 그는 "헌재가 담당하는 정상적 역할과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헌법적 위기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헌법에 따라 공직자에 대한 파면 결정에는 재판관 6인의 찬성이 필요하다. 한 총리의 헌법·법률 위반을 인정한 재판관 전원이 중대성 요건까지 충족했다고 판단했더라도, 6인에 미치지 못해 인용 결정을 할 수는 없었다.
나머지 3인 중 김복형 재판관은 재판관 임명 거부가 헌법·법률 위반이 아니라고 봤고,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국회가 국무총리 기준 의결 정족수(151석)를 적용해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가 부적법하다는 각하 의견을 냈다.
wat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