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개 마을서 693가구, 1천221명 대피…"아침에도 대피 이어져"
(의성=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다리가 후들거려 업혀 빠져나왔어."
대형 산불 이틀째인 23일 경북 의성실내체육관에서 만난 한 할머니(80대·점곡면 구암2리)는 잔뜩 굽은 등을 겨우 펴며 입을 열었다.
지팡이를 짚은 그는 "걷지도 모하는데(못하겠는데) 집 뒤 산으로 불이 넘어오더라"라며 "사무소(관공소) 직원이 빨리 나오라고 했는데도 놀라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고 다급했던 전날 상황을 전했다.
지난밤 의성종합체육관으로 대피한 이재민 200여명은 거센 화마에 가슴 졸이며 꼬박 날밤을 새웠다.
배현란(53·점곡면 명고리)씨는 "대피 방송도 나오고 이장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마다 다니며 대피하라고 말해주셨다"며 다급했던 당시 상황을 전한 뒤 "밤사이에는 한잠도 못 잤다. 불길이 너무 거세 놀랐다"고 말했다.
그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산불 영상에는 온통 산을 뒤덮은 불이 금방이라도 주택가로 넘어올 듯한 기세였다.
의성종합체육관에는 전날 오후 10시께부터 재난 구호용 텐트가 설치됐다.
주민 대부분은 가족 또는 마을 단위로 각기 텐트 안에서 밤을 보냈다.
오전 7시가 되자 이곳저곳에서 "밥을 먹으라"는 자원봉사자들의 말소리가 이어졌다.
이곳에 대피한 아동복지센터 관계자는 10대 청소년들에게 감기약을 먹으라고 재촉했다.
텐트 옆 다른 쪽에서는 요양원에서 대피해온 어르신들이 이불을 깔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노란 점퍼를 입은 요양보호사들은 누워있던 어르신들을 일으켜 세워 아침 식사를 챙겨 먹였다.
한 요양보호사는 기자에게 "많은 어르신이 와상 상태로 전체적으로 한 번에 다 돌봐야해서 텐트 안으로 모실 수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의성군 일대 하늘에는 연신 진화용 헬기가 지나는 소리로 가득찼다.
군 전역에 퍼진 매캐한 연기는 전날 발생한 산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가늠케 했다.
의성읍 철파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밤에 대피했다가 불길이 지나갔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며 "중요한 물건만 챙겨서 다시 대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 산등성이로 불이 아직도 보인다"며 집앞에서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의성군에서는 이번 산불로 밤사이 35개 마을의 693가구 주민 1천221명이 마을회관, 체육관 등으로 대피했다.
의성종합체육관에 있던 한 군청 관계자는 "산불이 꺼지지 않아 아침에도 새로 대피해온 주민들이 있었지만 이곳은 자리가 모두 차 다른 대피소로 안내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sunhy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