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랭가이드 5년 연속 별 받은 도쿄 스시점 한국인 셰프 문경환
민어·돌 멍게 주목…"스시는 내놓는 순간이 가장 맛있어, 바로 먹어야"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가게 문을 닫는 순간 저쪽과는 분리된 세계로 생각하고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5년 연속 미슐랭가이드 별을 획득한 일본 도쿄의 스시(초밥) 전문점 스시야쇼타(すし家祥太) 지점장 문경환(38) 셰프는 가게를 처음 찾아오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고 한다.
수필집 '스시로 별을 품다' 출간을 계기로 지난 18일 인터뷰한 문 셰프는 그가 운영하는 스시 전문점을 두고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시대에 지친 마음을 돌봐주는, 마음의 병을 낫게 해주는 그런 공간"이라며 이렇게 접객 요령을 소개했다.
그는 '스강신청'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최근 오마카세 스시의 인기가 높아진 데 대해 "맛도 즐기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해석했다.
'스시'와 '수강신청'의 합성어인 스강신청은 어떤 음식을 먹을지를 요리사에게 일임하는 방식으로 서비스하는 이른바 '오마카세'(お任せ) 스시 전문점 예약이 대학의 인기 과목 수강신청처럼 어렵다는 것을 표현하는 신조어다. 스시야 쇼타 역시 오마카세 방식으로 영업한다.
문 셰프는 "맛있는 스시를 먹고 요리사와 대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행복하다. 또 오고 싶다. 내가 이래서 돈을 벌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며 손님들이 보여주는 기대감 혹은 만족감이 스시 장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고백했다.
"'이게 대충 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니구나'하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을 마음까지 달래는 요리를 위해서는 시장에도 매일 가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본고장에서 인정받은 한국인 셰프가 소개하는 스시를 맛있게 먹는 법은 무엇일까.
"나오는 대로 바로바로 드시는 게 좋습니다. 스시를 내놓는 그 순간이 가장 맛이 있거든요."
스시 셰프, 특히 오마카세 방식으로 서비스하는 장인은 손님의 취향은 물론 먹는 타이밍과 초밥의 양·온도 등 맛에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서 최적의 시점에 완성된 초밥을 손님 앞에 내놓기 때문에 그 즉시 먹어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재료에 대한 호불호는 손님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문 셰프는 특정 생선에 알레르기가 있거나 와사비(고추냉이)의 양을 조절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머지는 '나를 믿고 맛보라'는 취지로 적극적으로 권하는 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등푸른생선은 맛이 없으니 빼달라는 분들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한 번 (먹어 보라고) 추천합니다. 정말 맛있는 등푸른생선을 드시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삶의 행복이 하나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죠."
문 셰프가 손님의 의향을 마냥 좇지 않고 평소에 다소 거북하게 느끼는 재료도 도전해보라고 제안하는 것은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내가 만든 스시에 자신이 없으면 권유를 못 할 것 같다"며 "나는 인생을 스시에 걸었다"고 말했다.
문 셰프는 새벽 5시에 도쿄의 부엌인 도요스(豊洲)시장에서 싱싱한 생선을 직접 고르고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다면서 "모든 손님이 맛있다고 느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생선만 내놓는다"고 강조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맛있는 초밥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생굴을 초에 절인 뒤 밥에 올려서 내놓는 '굴 스시'를 권했다.
일본에서는 손님을 성심성의껏 대접하는 것을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라고 한다. 문 셰프는 오모테나시가 "단골 문화라서 가능한 것 같다"며 대접하는 사람과 대접받는 이들의 상호작용이 빚은 결과라고 해석했다.
"가게를 열면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주로 대를 이어가며 요리를 하고 한번 그 가게의 손님이 되면 역시 할아버지에서 시작해서 역시 아버지, 아들, 손주까지 대를 이어 단골이 됩니다. 손님은 음식점을 믿고 요리사는 손님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진정한 의미의 오마카세가 되는 것이죠."
충남 논산시 출신인 문 셰프는 중학교 때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고 주인공 세키구치 쇼타(関口将太)와 같은 스시 장인이 되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2010년 도쿄로 건너간 그는 이듬해 스시 전문점을 운영하는 스시카네사카그룹에 들어가 수련을 거듭했다. 언어 장벽을 극복하고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2019년 이 그룹의 지점인 스시야쇼타를 열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에게 스시 전문점 운영을 맡기는 것 자체가 흔하지 않은 일인데 문 셰프는 스시야쇼타로 2020년부터 5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 별 1개를 받았다.
그의 목표는 일본이 전통으로 여기는 방식을 재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나중에 제 개인 가게를 차리면 한국 생선을 일본으로 가져와 스시를 쥐어(만들어) 일본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한국 생선도 맛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은 한국 사람인 제가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에게 맛 보여주고 싶은 한국 수산물로는 민어와 돌멍게를 꼽았다.
일본에서 민어는 구하기 어렵고 멍게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먹는 문화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잘 손질해서 올리면 도쿄만에서 잡은 생선을 재료로 삼아 발달한 이른바 '에도마에스시'(江戸前寿司)를 창조적으로 변형하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문 셰프는 확신하고 있다.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