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서 충돌사고로 '전치 4주' 부상 입혔는데 과실치상 무죄

연합뉴스 2025-03-23 07:00:24

법원 "주행속도 등 밝혀지지 않아…피하기 불가능했을 가능성"

스키장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2023년 1월 A(46)씨는 수도권 스키장에서 'S' 모양을 그리면서 신나게 스노보드를 탔다. 스노보드를 탄 지 10년가량 된 그는 다소 가파른 중급자 코스를 선택했다.

그러나 A씨는 코스 중간 지점까지 내려왔을 때 다른 스키어 B씨와 갑자기 충돌했다. B씨는 지인 사진을 찍어주다가 눈 위에 떨어뜨린 휴대전화를 줍기 위해 슬로프 중간에 멈춰 있던 상태였다.

A씨의 머리와 심하게 부딪힌 B씨는 가슴뼈가 부러졌고, 결국 병원에서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검찰은 A씨가 스키장에서 앞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고 스노보드 속도도 조절하지 못해 사고를 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같은 해 4월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해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하자 그는 억울하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A씨는 "사고 지점 바로 위에 둔덕이 있었다"며 "둔덕 바로 아래쪽에 있던 B씨를 충돌 직전까지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고 당시 함께 스노보드를 탄 A씨 지인도 법정에서 "피고인 뒤를 바로 따라 내려왔는데 혼자 넘어진 줄 알았다"며 "그 밑에 있던 사람을 못 봤다"고 증언했다.

1년 가까이 진행된 1심 재판 끝에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지난해 5월 "B씨의 진술이 피고인 진술에 부합한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판사는 "피고인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스노보드를 탔다거나 돌발 주행을 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곧바로 항소한 검찰은 "A씨가 스노보드를 타고 슬로프를 내려오면서 피해자를 발견하고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거리였다"며 "1심 법원이 사실을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도 A씨의 과실이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천지법 형사항소2-1부(이수환 부장판사)는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주행속도와 충돌 당시 시야 범위 등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상 사고 결과만으로 A씨의 과실이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며 "충돌 직전 시점에 A씨가 B씨를 안전하게 피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심은 직접 증인신문을 한 뒤 증언 태도 등을 관찰하고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며 "원심 판단이 명백하게 잘못됐다고 인정할 특별한 사정도 없다"고 덧붙였다.

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