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로 CEO "변전소 3곳서 공급받지만 공급망 재조직 필요했다"
재난관리 체계에 우려 제기…"국가적 인프라 회복력 기준 세워야"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유럽 주요 관문인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이 21일(현지시간) 인근 변전소 화재로 인한 정전으로 거의 온종일 폐쇄할 만큼 큰 피해가 빚어진 점을 두고 비상 대응과 인프라 관리 체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런던 서부 헤이스에 있는 노스 하이드 변전소는 히스로 공항에서 약 3㎞ 떨어져 있다.
AP 통신 등 주요 외신과 현지 매체에 따르면 런던소방청은 20일 밤 11시 20분께 신고를 받고 변전소로 출동했고, 21일 새벽 6시 30분께 큰 불길을 잡았다.
화재로 인근 일대에 정전이 발생했다. 밤사이 10만가구에 전기가 끊겼고 히스로 공항은 이날 밤 11시 59분까지 공항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이날 저녁 약 18시간 만에 공항 운항이 아주 일부 재개됐지만, 이날만 항공편 1천300여 편, 승객 20만여 명 운송에 차질을 빚었다. 숀 도일 영국항공 CEO는 영상 성명에서 "전력이 가능한 한 빨리 복구되기를 기대하지만, 그렇더라도 향후 수일간 운항에 차질이 빚어져 항공사와 승객들에게 여러 날 충격이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한 건에 이렇게 피해가 컸던 데 대한 의문은 바로 제기됐다. 윌리 월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사무총장은 IATA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히스로가 또다시 승객과 항공사 모두를 실망하게 했다"며 "몇 가지 중대한 의문이 생긴다"고 썼다.
그는 "첫째로 국가적, 세계적으로 중요한 핵심 인프라가 대체 수단 없이 단일 전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나"라며 "정말 그렇다면 공항의 명백한 계획 실패"라고 지적했다.
한 유럽 항공사 대표도 로이터 통신에 "사람들은 그들(공항)이 상당한 백업 전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히스로 공항은 폐쇄 조치가 승객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비상용 예비 전력 공급 체계가 예상대로 가동됐지만, 공항 전체를 운영할 만큼 충분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토머스 월드바이 히스로 공항 최고경영자(CEO)는 히스로가 전력을 공급받는 변전소 3곳 중 나머지 2곳이 작동하고 있어 전력 복구에 충분하지만, 공항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공급망을 재조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상 대응 체계가 불충분했다는 지적에 대해 월드바이 CEO는 이번 정전이 "중소 도시에 맞먹을 규모의 전례 없는 사태"였다면서 "우리 절차는 모두 예상대로 가동돼 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어떤 규모의 비상 상황에는 우리가 100% 대비할 수 없는데, 이번 일이 바로 그랬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화재를 떠나 공격이든 자연재해든 통신, 전력망 등 중대한 국가 기반 시설에 타격이 가해졌을 때 비상 대응 능력이 충분한지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안보분야 싱크탱크 헨리잭슨소사이어티의 앨런 멘도사 대표는 AP 통신에 영국 방첩기관이 최근 러시아의 사보타주(방해공작) 가능성을 경고한 점으로 볼 때 이 같은 상황은 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멘도사 대표는 "영국의 중대한 국가 인프라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줄 만큼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며 "화재 한 건에 히스로의 주요 시스템이 마비되고 백업 시스템도 가동되지 않는다면 이런 재난을 관리하는 우리 체계가 크게 잘못됐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화재 원인을 추측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면서도 화재 한 건으로 공항을 닫은 데 대해 "분명히 답이 필요한 의문들이 있다"고 했다.
한 총리실 대변인은 "이 규모의 혼란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 인프라 감시기관인 국가인프라위원회의 존 아밋 위원장은 이번 사태가 "인프라 운영자들이 단기적 충격에 대응하는 데 완전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영국은 교통, 디지털, 에너지, 물 인프라에 대한 국가적 회복력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BBC 방송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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