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인프라 공격 중단 합의 무색
러 "우크라, 테러 행위"…우크라, 러 자작극 주장
(파리·모스크바=연합뉴스) 송진원 최인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을 일시 중단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러시아 쿠르스크주의 중요 가스 시설이 포격 당했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 프랑스 BFM TV 등에 따르면 쿠르스크주 국경 지역 수자에 있는 가스 계량소가 간밤에 포격을 당해 불이 났다. 이 시설은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이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통로 중 하나다.
계량소가 있는 지역은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를 기습 공격한 뒤 점령했지만, 이번 주 러시아군이 탈환했다.
러시아 국영 TV 채널인 로시아24 등 여러 러시아 뉴스 채널은 우크라이나군에 책임을 돌리며 시설이 불타는 장면을 공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21일 기자들에게 "이 정보는 젤렌스키와 그 팀원들의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없는지 잘 말해준다"며 우크라이나가 계량소 공격의 명백한 '범인'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최고 사령관(푸틴)의 명령이 발효된 만큼 러시아군은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국방부는 쿠르스크에서 후퇴하던 우크라이나군이 가스 시설을 폭파한 것이라며 "키이우 정권의 고의적인 도발로, 미국 대통령의 평화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러시아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최근 공격들과 같은 맥락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 범죄를 수사하는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도 성명에서 우크라이나가 가스 시설을 폭파한 건 '테러 행위'라고 규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자작극이라고 맞섰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페이스북 성명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음해 공작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적들은 우크라이나군이 수자 가스 계량소를 포격했다고 비난했다"며 "이런 비난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계량소는 러시아에 의해 반복적으로 포격 당했다"며 "러시아군은 계속해서 수많은 가짜 정보를 만들어 국제 사회를 오도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 국영방송 기자와 인터뷰에서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우크라이나는 또 간밤 러시아가 214대의 무인 항공기(드론) 공격을 키이우, 오데사 등 곳곳에 퍼부었다고 비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러시아 공습을 알리며 "러시아에 대한 공동의 압박, 더 엄격한 제재, 우리에 대한 더 강력한 방위 지원"을 서방 동맹국에 요청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엑스에 러시아 공격으로 불에 탄 우크라이나 건물 사진을 공유하며 "어젯밤 러시아는 다시 한번 평화에 대한 열망을 진심으로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수자의 가스 계량소 포격으로 이날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한때 급등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유럽 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산 월간 선물 가격은 오전 장중 최대 6.2%까지 상승했다가 오후 12시7분(암스테르담 기준) 기준으로는 MWh당 43.84유로(약 6만9천원)로 2.3% 상승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가스 계량소가 올해 초까지도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던 경로의 일부였다며 이번 공격으로 노선 복구, 가스 재공급 가능성은 더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