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이병헌 "우여곡절 끝 개봉해 행복…유아인 가장 힘들 것"

연합뉴스 2025-03-22 00:00:25

제자 이창호와 대결하는 조훈현 역…"성격·심성·버릇 관찰해 연기"

"아들과 오목 두며 자세 연습…조 국수가 '나인 줄 알았다' 말해"

영화 '승부' 주연 배우 이병헌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새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떨리지만 '승부'는 특히 신나네요. 우여곡절을 겪어서 그런지, 스크린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김형주 감독의 영화 '승부'의 주연 배우 이병헌은 21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오랜 시간 끝에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된 소감을 묻는 말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승부'는 2021년 촬영을 마치고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또 다른 주연 배우인 유아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받게 되며 일정이 보류됐다. 그러다 바이포엠스튜디오가 배급을 맡아 오는 26일 극장에 걸리게 됐다.

이병헌은 "사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힘든 건 그 친구(유아인)일 것"이라면서 "마음이 많이 다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계 대표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병헌은 '바둑의 황제'라 불리는 조훈현을, 유아인은 어릴 적부터 그에게서 바둑을 배운 제자 이창호를 연기했다. 영화는 사제 간인 이들이 번번이 결승전에서 맞붙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병헌은 "역사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늘 부담스럽다"면서 "조 국수님(조훈현)을 직접 만나 그분의 성격, 심성, 버릇 같은 것을 관찰했다"고 돌아봤다.

영화 '승부' 속 이병헌

그는 검지와 중지로 턱을 괴고 다리를 떠는 조훈현의 습관을 따라한 것은 물론이고 일명 '2:8 가르마' 머리와 치켜 올라간 눈썹을 분장하는 등 외모도 조훈현처럼 바꿨다.

이병헌은 "다큐멘터리와 사진에서 본 조 국수의 모습을 제 머릿속에 다 넣어두고 촬영하기 직전에도 또 한번 본 뒤 그대로 했다"면서 "예고편을 본 조 국수께서 '나를 보는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 웃었다.

이병헌은 또 유아인이 이창호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이창호의 돌부처 같은 모습이 딱 나오는 것을 봤다"며 "현장에서도 그 캐릭터를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지 과묵하게 있었다"고 떠올렸다.

'승부' 제작이 확정되고 조훈현이 김 감독에게 한 첫 번째 부탁은 "(배우가) 바둑돌만은 제대로 잡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병헌은 캐스팅 확정 후 프로 바둑기사에게서 개인 교습을 받으며 자세를 익혔고, 집에 바둑판을 마련해 연습을 이어갔다.

그는 "놓아진 바둑돌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거침없이 돌을 놓고, 능숙하게 상대 돌을 가져가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면서 "아들에게 오목을 가르친 뒤 함께 오목을 두며 (자세를) 연습했다"고 회상했다.

영화 '승부' 속 이병헌

그러나 '승부'가 바둑 자체보다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방점을 찍은 작품인 만큼 조훈현의 감정선을 잘 표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이병헌은 강조했다. 특히 조훈현이 제자에게 생각지도 못한 패배를 당한 뒤 넋이 나간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정서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조 국수님께서도 그땐 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상상도 못 한 상황에 놓인 조훈현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깊었죠. 연기를 해도 뭔가 만족스럽지 않고,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들었어요. 며칠 후에 감독님께 다시 찍으면 안 되냐고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좀 더 다르게 연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겼거든요."

이병헌 또한 배우 생활을 하며 당시 조훈현이 느낀 감정과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1990년대 드라마에서는 승승장구하면서도 영화에서는 데뷔작부터 내리 네 편을 흥행에 실패했을 때다.

그는 "최근의 제 커리어를 보면 사랑받은 작품이 많아서 모르시지만, 저는 (1990년대) 충무로에서 절대 쓰면 안 되는 배우였다"면서 "네 번을 망하고 '내 마음의 풍금'에 캐스팅됐을 때 충무로의 미스터리라고들 했다"고 말했다.

영화 '승부' 속 이병헌

이후 그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흥행 배우 반열에 올랐다. 그는 최근 박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주연으로 낙점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이병헌은 "감독님이 요구하시는 게 워낙 많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었다"며 "박 감독님에게 '수정사항'이라는 별명을 붙여드렸다. 촬영 후에 좋다고 하시면서도 늘 네다섯가지 수정해야 할 부분을 말씀해주시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적응할 것도 없이 아주 신나게 작업했다"면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기대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