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유동화증권 4천억원 구제길 열려…변제 시기는 미확정(종합)

연합뉴스 2025-03-22 00:00:10

회생법원 중재로 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 '상거래채권' 인정키로 합의

개인투자자 비중 44% 달해…투자자 손실 방지·논란 해소 발판 기대

법원 승인·채권자 동의 절차 남아…'상환 재원 불분명' 지적도

홈플러스 전단채 피해자들, 상거래채권 인정 촉구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송은경 기자 =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맡은 법원의 중재로 회사 측과 금융사가 투자자 피해 우려가 큰 '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을 정상 변제가 가능한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하기로 합의해 투자자들이 우선은 숨통을 트게 됐다.

이 유동화증권은 홈플러스가 쓴 신용카드 대금(카드사에 내야 할 돈)을 토대로 발행한 채권으로, 개인투자자들이 많이 산 탓에 특히 논란과 파장이 컸다.

유동화증권은 원칙적으로 회생절차에 따라 상환이 유예되는 금융채권이지만, 홈플러스가 정상적으로 변제하겠다고 밝힌 상거래채권의 성격도 갖고 있어 상거래채권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투자자들은 유동화증권이 금융채권으로 처리되면 변제 기간이 대폭 늘어나 돈이 묶이는 것은 물론이고 홈플러스의 자금 사정에 따라 상환액이 수십%씩 삭감돼 큰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유동화증권의 발행 규모는 4천19억원이며 이 중 개인투자자의 구매액은 1천777억원으로 전체의 44%에 달한다.

홈플러스는 회생법원의 중재 아래 이 사안의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유동화증권의 기초가 되는 매입채무유동화(카드대금) 잔액 4천618억원을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하기로 합의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발행된 유동화증권도 카드대금과 동일하게 상거래채권으로 인정받게 될 전망이며, 홈플러스는 회생절차에 따라 변제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홈플러스는 올해 6월까지 법원에 낼 회생계획안에 상거래채권 관련 합의안을 반영할 예정이며, 이후 채권단 동의를 거쳐 법원 승인을 받으면 계획안대로 최종 시행할 수 있게 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채권자들이 상거래채권으로 신고를 하면 관리인은 그 내용을 기반으로 회생계획안을 만들 것"이라며 "법원이 회생계획 자체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그에 따라 조정할 여지도 있지만 그동안 경험에 비춰보면 법원이 유동화증권을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유동화증권은 신영증권[001720]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 발행했고, 이후 증권사 등 복수의 판매사를 통해 개인과 법인 등에 팔렸다.

일부 납품차질 발생한 홈플러스

홈플러스는 해당 증권의 발행사는 아니지만 대금 변제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어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면 결국 유동화증권 투자자들도 손실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가 이달 초 갑작스럽게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자, 금융투자업계에선 유동화증권을 둘러싼 사기·불완전 판매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적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투자자들은 결과적으로 홈플러스의 자금난 발생 가능성을 고지받지 못한 채 유동화증권에 투자했다며 사기·불완전 판매에 따른 피해를 주장해왔다.

유동화증권의 사실상 발행 주체인 신영증권은 홈플러스가 회생절차 신청 전까지 회사의 위기에 대해 함구한 탓에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게 됐다며, 홈플러스와 소유주인 사모펀드 운영사 MBK파트너스에 대한 형사고발 방안까지 검토한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채무로 분류가 됐다면 복잡한 법정 다툼이 벌어질 상황이었는데 이번 결정은 일단 다행"이라며 "각 판매사가 불완전판매 이슈로 시달리고 발행 주관사(신영증권)와 판매사가 홈플러스 측을 대거 고소·고발해 큰 혼란이 벌어질 상황을 우선 면했다"고 말했다.

단 유동화증권의 상환과 관련해서는 아직 불확실성이 적지 않다.

홈플러스 측은 매입채무유동화 잔액 관련해 정확한 변제 시기를 당장 밝히지 않은 데다, 어떤 재원으로 돈을 갚을지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납품차질 발생한 홈플러스

이 때문에 금투업계 일각에서는 '아직 현실성이 부족해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금투업계의 한 종사자는 "홈플러스가 유동성 부족으로 기존의 상거래채권도 다 못 갚는 상황이라 대주주 MBK 측의 추가 재원 투입 같은 조건이 없다면 유동화 잔액의 변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며 "재원 없이 유동화 증권을 먼저 상환한다고 하면 다른 채권자가 순위가 밀리는 등 피해를 겪을 수 있어 해당 계획안이 채권단 동의를 못 받을 공산도 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 사이 발생한 납품·용역대금 및 임대점포 정산금 4천584억원은 회생법원의 조기변제 허가를 얻어 현재 순차 지급 중이다.

유동화증권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사태 전까지는 홈플러스, 카드사, 증권사 모두에게 이득인 상품이었다.

카드사는 홈플러스에서 받을 카드대금 채권을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고 증권사는 이를 토대로 새 상품을 유통해 수수료를 벌 수 있었다.

홈플러스는 카드로 물품 대금을 쉽게 결제할 수 있고, 차후 카드값을 갚으면 이 돈이 SPC로 입금돼 유동화증권 투자자들이 상환받게 되는 구조였다.

홈플러스의 기업어음(CP) 등 전체 단기채권의 유통액은 지난 3일 기준으로 5천949억원이며, 이중 유동화증권이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