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루마니아 등에 생산거점 확보…중동·호주·美 투자 확대
美 필리조선소 등 해외조선소 인수·지분투자에도 8천억원 투입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K-방산 대표주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역대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3조6천억원의 실탄을 마련, 해외 생산 거점 확보에 나선다.
경쟁사로 꼽는 독일의 라인메탈이 14개국에 생산 거점을 구축한 것에 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생산 기지는 한국과 호주 2곳에 불과해 향후 3∼4년간 집중 투자를 통해 유럽, 중동, 미국 등에 생산 기지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일 3조6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하면서 "해외 지상 방산, 조선해양, 해양 방산 거점을 확보해 글로벌 방산, 조선해양, 우주항공 분야의 톱-티어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증 발표 직후 연 컨퍼런스콜에서 독일 최대 방산기업인 라인메탈과 실적 및 글로벌 거점 확보 실태를 비교하면서 라인메탈을 뛰어넘는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레오포드 전차 등으로 유명한 독일 최대 방산기업 라인메탈은 시가총액이 99조7천억원 규모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34조5천억원)의 3배에 육박한다.
지난해 라인메탈의 영업이익(약 2조3천억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약 2조원)보다 20%가량 높은 수준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라인메탈은 유럽은 물론 미국, 캐나다, 호주 등 14개국에 진출해 해외 거점이 한국과 호주 2곳뿐인 에어로스페이스와는 글로벌 입지가 다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라인메탈을 언급하며 "지금 한 단계 더 도약해 투자하지 않고 기회를 놓쳐 갭을 좁히지 못하면 자리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뒤로 밀려버린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유증을 통해 확보한 '실탄' 가운데 가장 많은 1조6천억원(44.4%)은 해외 방산 분야에 투자한다.
투자 지역은 유럽, 중동, 호주에 집중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대규모 방산 수출이 이뤄진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투자가 우선 집행될 전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폴란드 군비청과 K-9 자주포 672대, 다연장로켓 천무 288대 등 수출 기본계약을 맺고, 그해 K-9 212대, 천무 218대에 대한 1차 계약을, 이듬해 K-9 152대에 대한 2차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2차 계약에는 폴란드에 K-9 및 자주포용 155㎜ 탄약과 K-9의 유지·보수를 위한 종합군수지원패키지(ILS)를 공급하고, K-9 유지 부품의 현지 생산에 협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작년 7월 루마니아 국방부와 맺은 K-9 54문, K-10 탄약 운반 장갑차 36대, 탄약 등 총 1조3천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에도 '현지 업체와 협력해 2027년부터 순차 납품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들 국가에 대한 투자 계획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현재 동유럽 국가들과 지상 무기체계 현지생산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며 이를 다른 유럽 국가로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주에서는 작년 8월 국내 방산업체 최초로 완공한 해외생산기지인 'H-ACE'의 시설 확대 및 신규 투자를 검토한다.
이곳에서는 작년 하반기부터 K-9과 K-10의 호주 개조 모델인 AS9 자주포와 AS10 탄약 운반차를 생산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레드백 궤도형 장갑차 생산을 시작, 호주에 총 129대를 순차 인도한다.
호주 현지 생산기지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및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보 동맹)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중동에서는 이집트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을 추진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이집트 정부와 2조원 규모의 K-9, K-10, K-11 사격 지휘 장갑차 등 패키지 수출을 체결하고, 올 하반기부터 K-9 현지에서 본격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작년 2월에는 사우디 국가방위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장갑차 등 지상무기체계부터 로봇, 위성을 활용한 감시정찰체계까지 국가방위부의 중장기 계획에 참여하기로 했다.
유증 자금 22%에 해당하는 8천억원은 미국 시장을 겨냥해 해외 조선 투자에 집중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조선업 재건을 추진하는 것을 기회로 보고 한국의 거제 옥포 조선소-미국의 필리 조선소-싱가포르의 다이나맥 조선소를 연계한 멀티야드(Multi-Yards) 전략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최근 단행한 호주 조선사 오스탈 지분 투자처럼 해외 조선 시설 및 지분 투자도 적극 검토한다.
오스탈은 미국 함정 시장에서 소형수상전투함 부문 시장점유율이 40%에 달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미국과 필리핀, 베트남 등에 군수·민수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오스탈 투자는 지분 9.9% 투자에 대한 승인이 이뤄졌고, 지분 19.9% 투자에 대한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유증 자금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조선소 인수와 시설 투자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d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