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서 10년간 진행한 DMZ 프로젝트 소개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설치미술가 최재은은 지난 2015년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에서 진행된 동시대미술 프로젝트인 '리얼 DMZ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DMZ에 남북을 공중으로 연결하는 통로인 공중정원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작가는 친구인 일본 유명 건축가 반 시게루에게 연락했고 세계의 다양한 미술가와 건축가, 과학자, 생태학자도 동참하면서 DMZ에 공중정원과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정자, 타워, 종자 저장소, 지식 저장소 등을 건립하는 '대지의 꿈'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공중정원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DMZ의 생태 환경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접근도 어렵고 제대로 된 지도도 없는 DMZ의 생태 환경을 파악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의 파라다이스 같은 곳으로 여겨졌지만, 알고 보니 DMZ는 남북한의 초소 인력 5천여명이 70여년간 생활하면서 파괴된 곳들이 많았다. 작가는 생태계 복원을 위해 지뢰가 매설돼 직접 접근이 쉽지 않은 DMZ에 나무 종자를 품은 직경 3∼5cm 크기의 종자 볼(seed bomb)을 드론으로 뿌리는 일에 나섰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20일 시작한 최재은의 개인전 '자연국가'는 10년간 진행해온 DMZ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다. K3 전시장은 작품을 전시한다기보다는 관람객들에게 DMZ 생태계 복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성격이 크다.
작가가 매일 숲을 산책하며 수집하고 말린 꽃잎으로 만든 병풍 안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놓여있다. 관람객은 컴퓨터를 통해 작가가 만든 웹사이트에 들어가 DMZ 지도를 살피며 자신이 원하는 구역에 종자 볼 기부를 약속할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는 종자 볼 샘플과 종자 볼에 들어갈 나무 종자 40여종이 전시됐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종자 볼을 기부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든지 기부를 약속할 수 있고 실제 기부는 환경이 마련됐을 때 이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 소개 영상을 통해서도 "종자 볼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라며 "가능한 많은 작가가 생태에 대해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간다면 세상은 조금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K2 전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자연을 주제로 삼아 온 작가의 다양한 작업들을 소개한다. K2 1층에서는 '숲'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재 살고 있는 일본 교토의 동네 숲을 산책하며 주워 모은 낙엽과 꽃잎을 재료로 안료를 만들고 캔버스에 칠했다. 자연의 색으로 칠해진 캔버스에는 낙엽이 '사르르' 떨어지는 소리를 의미하는 'Sarrrr' 같은 바람소리, 새소리, 빗소리 등 숲속에서 들었던 소리를 음차해 흑연으로 적어넣었다. '나무'를 주제로 한 2층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직접 쓴 시 '나무의 독백'과 황금색 나뭇가지 조각, 일본 후지산에 있는 200여년된 고목의 밑동을 느린 속도로 360도 회전하며 담은 흑백 영상 작품이 상영된다.
전시는 5월 11일까지.
같은 기간 국제갤러리의 K1과 한옥 전시장에서는 원로 단색화가 하종현의 개인전도 함께 열린다. 마대 뒤에서 물감을 앞으로 밀어 마대의 성긴 올 틈으로 물감이 배어 나오게 하는 '배압법'을 이용한 작가의 대표작 '접합'을 다양하게 변주한 작업들이 전시된다. 인근 아트선재센터에서 '접합' 이전인 하종현 작가의 청년 시절 작업을 선보이고 있어[https://www.yna.co.kr/view/AKR20250214037800005?section=search] 연계해 보면 좋은 전시다.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