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은 모든 협상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과의) 회담에서 언제나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종전 협상 과정에서 '패싱'될 것이란 EU의 우려를 덜어주려는 듯, 미국측에 유럽의 참여 필요성을 전달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일부 외신은 이 대목을 전하면서 '젤렌스키가 EU 정상들을 안심시켰다'고 표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EU 정상들에게 전날 이뤄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전화통화 결과도 공유했다고 EU 당국자는 전했다.
EU 외교수장 격인 카야 칼라스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회의 시작에 앞서 기자들에게 "젤렌스키 대통령에게서 어제 통화 결과를 듣는 것을 매우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대서양 동맹'인 미국 측으로부터 어떠한 정보 공유도 받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종전협상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고 기습 발표한 직후부터 EU는 장외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처지로 전락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와 EU가 대(對)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며 끈끈한 연대를 과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한 이후 이날까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한 차례 전화 통화조차 하지 않았다. 영국, 프랑스 등 개별 유럽 국가 정상들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EU에 대해선 "미국을 뜯어먹으려 만든 조직"이라고 공개적으로 폄훼하는가 하면 EU를 '관세전쟁'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칼라스 고위대표의 경우 지난달 말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동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DC까지 갔다가 현지에서 회동이 막판에 취소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EU 집행위는 양측의 일정이 어긋났다고 항변했지만, 출입기자단에 세부 일정까지 사전 공지했던 터라 체면을 구겼다.
위기감을 느낀 EU는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다시 적극적으로 모색 중이다.
평화협상 국면에서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전날 발표한 국방백서에서 2030년까지 유럽의 재무장을 추진하겠다며 8천억 유로(약 1천272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조달 동원 계획을 내놨다.
계획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가속하는 동시에 EU 회원국들의 국방비 증액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U 27개국은 이날까지 약 한 달여간 세 차례나 정상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도 논의했다.
그러나 친러 성향 헝가리의 어깃장과 '돈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이어지면서 이렇다 할 결과물은 아직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EU 정상들을 향해 "유럽이 글로벌 경쟁에서 강력해야 한다고 말하려면, EU는 더 신속하며 유연하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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