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밥보다 잠이 중요하죠"

연합뉴스 2025-03-21 06:00:08

리클라이너 영화관서 낮잠·수면 카페서 휴식

"수면을 경시하는 사회문화에 경각심 가져야"

대놓고 낮잠 자기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지난 20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메가박스 강남점.

2개관 110석이 매진됐다. 그러나 스크린에서는 아무것도 상영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숙면을 취했다.

메가박스 강남점은 17∼21일 점심 2시간 동안 영화관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메가쉼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강남점 전관에 리클라이너 좌석을 도입하며 재단장을 앞두고 추진한 이벤트다. 요금은 1천원.

이용객들은 직종, 성별,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후드티와 롱패딩의 편안한 옷차림을 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위아래로 검은색 정장을 맞춰 입은 직장인도 보였다.

이들은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가며 자신에게 맞는 리클라이너 기울기를 찾았다. 입고 왔던 외투를 벗어 담요처럼 덮거나, 가방에서 이어폰 혹은 안대를 꺼내 본격적인 취침을 준비했다.

곧이어 영화관 내 조명이 어두워지더니 조용한 명상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스크린에는 깊은 숙면으로 인해 추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음을 주의하는 안내 문구가 떴다.

옆 사람 얼굴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조도, 차분한 음악, 편안한 의자까지 더해져 절로 하품이 나왔다. 리클라이너 의자가 적당히 넓어 체구가 작은 여성들은 옆으로 눕는 등 자유롭게 몸을 뒤척일 수 있었다.

초반에는 속닥속닥 옆 사람과 얘기하는 소리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용객 대부분이 잠들어 영화관 내부가 조용해졌다.

"영화관에서 낮잠을"

이용 시간 종료 후 영화관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직장이 학동에 위치한다는 장모(25) 씨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리클라이너를 이용해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며 "처음에는 '잘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편해서 40분 넘게 꿀잠을 잤다"고 했다.

점심식사를 못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장씨는 "밥보다 잠이 중요하죠"라며 웃었다.

또 다른 직장인 이모(37) 씨는 이틀째 이곳 영화관을 찾아 낮잠을 청했다고 한다.

이씨는 "2년 전 수면 카페를 이용하며 낮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점심에 잠을 자고 나니 확실히 환기되고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인근 영어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만날 수 있었다. 취업준비생 김모(24) 씨는 "수업을 듣고 딱히 쉴 곳이 없어서 찾아왔다"며 "최근에 밤마다 생각이 많아서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니 한결 몸과 정신이 개운하다"며 말했다.

수면카페

최근 만성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직장인, 학생들을 위한 수면·휴식 공간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강남에 위치한 한 수면 카페는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내부가 침구류 및 안마의자로 꾸며졌다. 각 이용자는 암막커튼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각자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청할 수 있다.

각 커튼 사이로는 싱글사이즈의 침대와 베개, 이불, 무드등, 귀마개 등이 마련돼있어 마치 자취방을 옮겨놓은 듯 했다.

강남에 있는 또 다른 안마의자 카페에는 최신형 무중력 안마의자와 함께 OTT를 시청할 수 있는 커다란 빔프로젝터가 비치돼있다.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탄 것과 같이 담요, 실내 슬리퍼, 안대, 가글, 물티슈 등 다양한 편의 용품도 준비돼있었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 미팅과 미팅 사이 빈 시간, 야근 중 휴식 시간 등을 이용해 수면·안마의자 카페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료는 수면 카페가 한시간에 7천~8천원, 안마의자 카페는 1만원대 정도다.

인스타그램 이용자 'li***'는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해 잠깐 잘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수면 카페를 발견했다. 생각지 못한 곳인데 40분 동안 꿀잠을 잤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용자 'sh***'도 "강남역에 볼일이 2개였는데 중간에 시간이 많이 비어서 수면 카페를 찾았다"고 썼다.

안마의자 카페

대한수면연구학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인의 수면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58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시간 27분)보다 18% 부족했다.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인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많은 이들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낮잠 및 휴식 공간을 찾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다만 낮잠을 지나치게 길게 자는 것은 오히려 야간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20∼30분 내로 제한해 균형 잡힌 수면 사이클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새벽까지 학원에 보내고, 직장인들이 커피를 달고 사는 모습을 통해 한국이 기본적으로 잠을 '줄여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수면을 경시하는 사회 문화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winkit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