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협동정미소 터·원동무역 사옥·지하련 주택…활용 '답보'
"완전 복원 어렵지만 이야깃거리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 필요"
(창원=연합뉴스) 정종호 기자 = "'조선인은 단결심이 없다. 그러므로 공동사업 같은 것은 바랄 수 없다.' 당시 일본인들은 우리를 이렇게 멸시하고 있었다. 동업하기로 한 이면에는 물론 자금 사정 탓도 있었지만, 그러한 멸시를 보기 좋게 꺾어보겠다는 오기도 있었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생애 첫 사업을 하던 1936년 봄을 이같이 회상했다.
당시 26세였던 그는 동업자인 정현용, 박정원 씨와 합심해 현재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일대에 '마산 협동정미소'를 열었다.
정미소 상호에서부터 식민지 조선 청년 이 회장의 민족의식을 느낄 수 있지만, 지금 그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20일 마산 협동정미소 터인 마산회원구 회원동 403번지(당시 주소 창원군 내서면 회원리 403번지) 인근에는 상아색 외벽의 3층 규모 상가 등이 들어선 모습이었다.
상가 업주와 주민들은 자신들 터전에 이런 사연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곳에서 약 3년간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한 A씨는 "상가 건물이 이 회장 첫 사업장 터라는 것을 아예 몰랐다"며 "이전 세입자한테도 그런 내용은 듣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곳 일대에서 30년가량 살았다는 70대 주민 B씨도 "항상 지나던 길인데 지금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창업주가 마산 일대에서 첫 사업을 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작 그 위치가 어딘지도 모르는 주민이 많다 보니 최근 지역 사회에서는 이를 산업관광자원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남수 창원시의원은 임시회에서 "마산 협동정미소 역사를 복원해 지역의 소중한 역사 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원시 차원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같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근대 마산 유적이 협동정미소 터 한 곳이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지역교육사업과 조선국권회복단 등 독립운동단체 자금을 지원한 민족주의 회사로 알려진 원동무역의 사옥도 현재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그대로 남아 있으나 뾰족한 활용 대책은 없다.
약 100년 전인 1928년에 준공된 이 사옥에는 현재 개인 음식점이 들어서 있고,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도 않는 등 유적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인인 임화와 결혼한 여류 소설가 지하련이 한때 살던 마산합포구 산호동 '지하련(池河連) 주택'도 유적 활용은 답보 상태다.
2층 목조에 일본식 시멘트 기와를 얻은 양옥 형태의 이 집에서 지하련은 1940년부터 살면서 '결별' 등 단편소설 4편을 남겼다.
이 때문에 문학사·지역사 등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았으나 이 부부가 월북한 이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10년 전에는 불까지 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지난해 창원시에서 고시한 상남·산호지구 재개발정비사업 시행계획에는 근대건조물인 지하련 주택 원형 보존계획이 포함됐지만, 계획상 실질적 원형보전이 어렵다는 주장이 시민사회에서 제기되면서 원형 보전 논의에 대한 큰 진전은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박영주 전 경남대박물관 비상임 연구위원은 "마산은 근대 도시이지만 근대를 보여주는 건물이나 유적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며 "세월이 많이 지난 탓에 완전 복원 등은 어렵겠지만 (이들 유적이) 지역의 이야깃거리로 활용되도록 지역사회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jh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