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서 1억∼2억 낮춘 매물 등장…매수자들 "일단 지켜보자" 관망
"한 달 만에 정책 번복이라니" 불만 쇄도…고점 매수자들 계약 파기 문의도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한 달 만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이라니, 이게 가능하네요? 이 바닥에 잔뼈가 굵은 인근 중개사들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을 보고 다들 놀라는 중입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지난 19일 강남 개발지역은 물론 강남 3구와 용산구 아파트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자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의 반응이다.
이 대표는 "집값이 너무 올라서 정부가 대출 규제를 추가로 강화하거나 규제지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허가구역 해제를 번복할 줄은 몰랐다"며 "23일까지 갭투자 기회가 있지만 예측불허 정책을 보고서 누가 집을 사겠느냐"고 말했다.
◇ 강남 등 시장 혼란…급매 나오고 계약 파기 문의도
20일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 대상지로 발표된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 일대는 막판 매수세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충격에 빠진 듯 조용한 분위기였다.
서울시가 허가구역으로 재지정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단지에는 중개업소들이 단속을 피해 일제히 문을 닫은 가운데서도 매도를 서두르려는 집주인들의 급매물이 나왔다.
리센츠 전용면적 84㎡는 허가구역 해제 호재로 호가가 32억원까지 올랐으나 지난 19일 오후에만 29억∼29억5천만원짜리 매물 3개가 나왔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잠실 엘스에도 호가를 1억∼2억원가량 낮춘 매물들이 출현했다.
잠실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인데 토허제 해제 호재로 호가를 높였다가 다시 재지정이 되니 집이 안팔릴까봐 급매 형식으로 가격을 낮춰 물건을 내놓은 것"이라며 "반대로 매물을 찾던 사람들은 집값이 하락할 것 같다면서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잠실의 또 다른 중개사무소 대표도 "허가구역 해제 호재로 매물 가격은 급등했는데 실제 오른 가격에 거래된 경우는 주택형별로 5건 이하로 많지 않았다"며 "정책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시장도 덩달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서초구 반포동 일대도 매수 문의가 뚝 끊겼다.
반포동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원베일리 매물을 찾던 매수자에게 전화해보니 허가구역 지정 소식에 놀라 다들 한 발 물러서고 매수를 보류하는 분위기"라며 "토허제로 묶이면 임차인이 있는 경우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걱정하는 집주인들의 문의 전화만 걸려 오는데 우리도 잘 몰라서 답변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주거지역 기준 6㎡ 초과(상업지역은 15㎡ 초과) 토지의 주택은 매수자가 2년 간 실거주를 해야 해 기존 임차인의 임대차 기간이 남아 있는 경우는 집을 팔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임대차 계약 기간의 종료가 임박했거나 임차인의 퇴거 확약 등 증빙자료를 첨부하는 경우에만 매도가 가능하다.
강남권 중개업소에는 토허제 해제 직전 최고가에 팔린 매물들의 계약 파기가 나올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보였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토허제 해제로 집값이 더 오를까봐 고점 매수한 사람들 입장에선 집값이 떨어질까봐 걱정이 크다"며 "가격 변동을 보고 계약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직접 입주가 어려워 갭투자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24일 시행 전에 계약을 마무리하려는 수요로 인해 막판 '반짝 거래'가 늘어날 수 있다고 현지 중개업소는 전망했다.
기존에 토허제로 묶여 있던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도 매수세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압구정동은 올해 강남 토허제 해제 여파로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매도자들이 배액 배상을 감수하고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번 토허제 확대 지정으로 그 반대의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압구정동의 한 중개사는 "통상 정식 계약 전에 예약금으로 2억∼3억원을 거는데 80억원대 후반에 팔았다가 100억원에 사주겠다는 매수자가 나타나면 4억∼6억원의 배액 배상을 하고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토허제 재지정으로 반대로 고점 매수하기로 한 사람들이 예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보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강남·서초 아파트값이 떨어지면 여기도 가격이 상승세가 주춤해지지 않겠느냐"며 "그동안 매물이 나오길 기다리던 매수 대기들이 조금 지켜보겠다며 한 발 빼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 마포·강동 등지도 풍선효과보다 관망 기류…"거래 위축되고 전셋값 뛸 수도"
이번에 토허제 대상에서 빠지면서 풍선효과가 예상되는 마포나 성동구, 강동구 일대도 일부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리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대체로 관망하는 모습이다.
매수 예정자들도 계약을 서두르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는 기류가 강하다.
마포구 아현동 래미안푸르지오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을 팔려고 내놨던 매도자가 마포가 규제 대상에서 빠지자 호가를 좀 더 올려서 내놓겠다며 매도를 보류한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전반적으로 매수세도 잠잠해져서 현재로선 집값 전망을 예측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성동구 성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도 "이쪽으로 매수세가 몰려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기대는 있지만 아직까지 조용하다"며 "향후 집값 전망이 불투명하고 오히려 강남이 떨어지면 이쪽도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작년 하반기처럼 다주택자의 신규 주택담보대출과 갭투자 방지를 위한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하는 등 대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당분간 거래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아파트 2월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이달 18일까지 신고분이 이미 5천500건을 넘었으나 시중은행의 대출 규제가 강화된 작년 하반기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월 3천건 대에 그쳤다.
강동구 고덕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번에 허가구역 지정에선 빠졌지만 정부가 투기를 잡으려면 이쪽도 결국 돈줄부터 죌 것"이라며 "이미 단기간에 가격이 많이 오른 상태라 매매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강남이 오르니 이쪽도 오랜만에 급매가 팔리고 호가가 올랐는데 집값이 다시 하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며 "거래가 쉽게 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이번 토허제 확대 지정으로 서울시내 전세 물건이 줄어들어 전셋값이 뛸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서초구 잠원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신학기 이사철이 끝나긴 했지만 당분간 토허제 지정으로 전세 물건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전셋값도 강세인 상태여서 시장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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