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듯 과거를 기억할 순 없다…신간 '기억한다는 착각'

연합뉴스 2025-03-20 00:00:22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미국인은 하루 평균 34기가 바이트의 정보에 노출된다. 최신 핸드폰이라도 이 정도 양을 온종일 사용하면 일주일을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보량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잘 까먹는다며 세월을 탓하곤 하지만, 사실 수십 년 전 정보를 기억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뇌에서 기억을 주로 담당하는 신피질에 있는 뉴런 세포의 수가 860억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견 많아 보이지만 뉴런이 주변 정보를 해석하고,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모두 관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결코 많은 수가 아니다. 제한된 기억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우리 몸은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활용할 수 있도록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길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망각하는 이유다.

가령, 살아남으려면 어떤 열매에 독이 있는지, 어느 강에 악어가 들끓는지, 식수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나를 도와주거나 배신할 사람은 누구인지 등 주요 정보를 기억하는 데 인간은 혼신의 힘을 쏟아야 했다. 다른 것들은 부차적이어서 잊어도 생존에 큰 무리가 없었다.

망각뿐 아니라 왜곡이나 변형도 기억의 특징 중 하나다. 생존을 위해 뇌는 항상 변화하는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먹을 것을 채집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곳은 세월이 흐르면서 황무지가 되기도 했고, 신뢰했던 사람이 등에 칼을 꽂기도 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기억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사진처럼 정확하고 고정적인 기억보다는, 맥락에 맞춰 유연하게 변하는 기억이 우리에게 더 필요했다고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차란 란가나스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 신경과학과 교수는 말한다.

그가 쓴 신간 '기억한다는 착각'(김영사)에 따르면 뇌는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매번 정보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기억할 때와 상상할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억과 상상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단순히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량의 맥락과 되살려낸 정보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럴듯한 과거를 상상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현재 시점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기억이 변형되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현재의 인식과 감정을 반영해 과거를 '다시 쓰고' 있다는 의미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김승욱 옮김. 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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