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지성의 발자취…신간 '도서관의 역사'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하자 수많은 책을 태우고 공부하는 유생들을 생매장했다.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최대의 장서를 보유했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을 비롯해 수많은 도서관도 전쟁 등의 이유로 불탔다.
그러나 도서관이 쇠락한 건 많은 경우 무자비한 파괴행위보다는 책과 장서에 대한 방치 때문인 경우가 더 많았다. 많은 장서가 버려진 창고나 폐허만 남은 건물 속에서 썩어갔다.
최근 출간된 '도서관의 역사'(아르테)는 인류 지성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새겨진 장소이자, 지식을 향한 인류의 열정을 보여 주는 공간인 도서관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앤드루 페테그리와 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 교수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탐구한다.
책에 따르면 도서관은 "지배층이 중시하는 가치를 보여 주는 권력의 상징물"이었다. 이에 따라 권력이 도전받을 때마다 수난을 피할 수 없었다.
실제 고대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단순한 지식 보관소를 넘어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연구하고 토론하는 학문의 중심지였으나, 여러 차례 치른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소멸했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후 책 제작과 수집의 중심지가 되었던 수도원 도서관 역시 수많은 정치적 풍파를 겪으며 불타고 버려졌다.
프랑스혁명 시기에는 기존의 왕실과 귀족 소유 도서관들이 파괴되거나 국유화됐고, 나치 독일과 소련 같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는 사상의 통제를 위해 많은 도서관 장서가 검열과 폐기의 대상이 됐다.
이 같은 역사는 도서관이 단순한 지식의 저장소가 아니라, 특정 이념이나 권력이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화적 기관임을 보여준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수천년간 역사 발전의 경로 속에서 부침을 거듭하던 도서관은 오늘날, 또 한 차례의 변곡점을 맞았다.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기술 발전 기조 속에서 예산 감소, 낡은 건물 유지비 증가, 새로운 서비스 요구, 전통 장서에 대한 관심 부재라는 4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선 시대의 풍향을 읽고, 그에 맞춰 변해야만 한다. 세계 곳곳의 도서관이 여러 변신을 모색하는 이유다.
최근 프랑스 도서관은 막대한 공공기금을 쏟아부어 미디어테크 망을 갖춘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한때 성당처럼 적막해 과거 유물 취급을 받던 대학도서관들도 학생들 요구를 수용하면서 연구 공간이자 만남의 광장으로 변하고 있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 변화를 거듭해 왔듯 현재의 도서관도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동근·장은수 옮김. 8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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