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길 제주관광문화산업진흥원장·강동훈 제주관광협회장 인터뷰
[※편집자 주 =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천300만명을 넘었지만, 비중이 큰 내국인 관광객은 꾸준히 감소세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 때 끊겼던 단체 크루즈여행 재개에 의존해 증가세를 유지하는 게 현실입니다.
제주 경제의 핵심인 관광산업이 풀기 어려운 여러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제주가 가진 천혜의 기후와 자연환경이라는 관광자원에 '금상첨화'가 될 제주만의 살거리를 개발하는 것 역시 해묵은 숙제입니다.
제주의 관광기념품은 돌하르방과 감귤초콜릿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에 제주 관광기념품 변천사를 짚어보고 관광기념품 업계의 현주소, 경쟁력 있는 제주 관광 굿즈를 만드는 사람들, 전문가들의 제언 등을 소개하는 기사 5편을 송고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 지역경제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20% 이상이다.
하지만 관광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관광기념품 산업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수십 년째 돌하르방과 감귤초콜릿을 넘어서는 대표 상품은 사실상 나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기념품 구매자는 중국산 대량생산 기념품이 주를 이루는 기념품 판매점에서 살거리를 찾지 못해 발길을 돌리고, 기념품 제작자는 여러 판매점을 통해 상품을 유통하고 싶어하지만, 수수료 등 부담에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다.
제주 관광기념품 산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김형길 제주관광문화산업진흥원장과 강동훈 제주관광협회장을 지난 14일과 17일 만났다.
이들은 관광기념품이 단순한 상품을 넘어 지역 경제를 이끌 수 있는 산업이라고 강조하면서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 "기념품 산업에 최소 1년에 10억원씩 10년은 투자해야"
김형길 제주관광문화산업진흥원장은 제주 관광기념품 잠재 시장이 약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관광기념품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 전 제주대 경영학과 교수로 제주관광기념품산업혁신연구단 위원장과 제주관광문화상품혁신센터이사장을 지냈고 '제주관광기념품 육성지원을 위한 중장기 과제 발굴 연구 용역' 연구진 등으로 참여했다.
그는 "제주를 찾은 관광객 1인당 평균 쇼핑비는 10만원으로, 지난해 제주 방문 관광객 수를 곱하면 약 1조3천767억원이 된다"며 "여기에 면세점 매출까지 합치면 제주 관광기념품 시장 규모는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시장 규모는 제주 감귤 조수입보다도 크다"며 "물론 면세점 매출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대부분 담당하고 있지만, 제주도만의 살거리를 만든다면 충분히 시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관광산업 중 지역 소득 환류 효과가 가장 높은 영역으로도 관광기념품 산업을 꼽았다.
그는 "관광기념품 산업은 1·2·3차 산업과 연계돼 있고 제주지역 농·축·수산물 등 원자재를 활용한다"며 "또 지역의 기술과 노동력을 기반으로 생산 활동이 이뤄져 지역주민 소득 증대에 기여할 뿐 아니라 고용 창출과 지방중소기업 육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지역 홍보는 물론 지역 문화와 전통 자연 등을 소재로 하는 만큼 문화 전승과 계승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광기념품 산업을 단순히 진열해 판매하는 것으로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서 제대로 육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살거리뿐 아니라 볼거리와 먹거리까지 함께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미국 길로이 마늘 축제를 가면 마늘 아이스크림부터 시작해 마늘과 관련한 특산품만 1천가지 넘게 판다. 축제가 끝나면 1년 내내 기념품으로 먹고산다"며 "하지만 우리는 축제에서 기념품 판매를 보기 어렵고 결국 축제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대만 천연 염색 공방인 '탁야소옥'도 사례로 들었다.
그는 "탁야소옥은 숙박업소와 체험, 기념품 판매가 동시에 이뤄진다"며 "숙박업소는 이불부터 커튼까지 천연 염색 제품을 사용하고, 관광객은 직접 전염 염색을 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근처에 쪽을 키우는 밭도 있다. 이런 문화적인 통합 시스템이 구축돼야만 기념품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제주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히트상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예술성에 중점을 둬 유통 채널과의 협상력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상작 판매 홍보 지원이 없는 점도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그러면서 '신제품'이 꾸준히 나올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김 원장은 "제주를 찾은 관광객 중 3번 이상 제주를 방문한 비율이 60% 이상이다. 이쯤 되면 새롭거나 독특하거나 차별성이 없으면 기념품을 구입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하지만 기념품 개발자는 대부분 영세업체로 성공 가능성이 10% 내외인 신제품 개발에 수천만원을 들일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제주관광협회와 테크노파크, 상공회의소 등이 공모를 통해 포장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단발적인 수 백만원 지원으로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서 할 수 없다"며 "최소한 1년에 10억원을 10년간 지원해 산업을 키우기 위한 인재 육성까지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고품질·지속 가능한 관광기념품이 곧 관광산업
강 협회장은 관광기념품이 지역 문화와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체이자 지역 경제의 한 축으로, 지속 가능한 제주 기념품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선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강 협회장은 "제주 관광산업에서 기념품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 제주에서의 여행 경험을 간직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며 "특히 지역 공예·특산품 산업과 연계돼 제주만의 고유 상표 가치를 높이는 역할까지 한다"고 말했다.
제주관광협회는 매년 제주관광기념품 공모전을 열어 제주만의 살거리를 발굴하고 있다. 벌써 올해로 28회째를 맞는다.
하지만 여전히 관광기념품에 대한 중요성 대비 지원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2개 수상에 대한 시상금 규모가 1천750만원에 그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마저도 가장 많은 시상금을 주는 대상 수상작은 최근 5년간 단 1건뿐이었다.
"될성부른 상품을 소수 정예로 골라 일정 기간 밀어주는 방식으로 히트작을 탄생시켜 나가는 방식을 고려해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충분히 고려할만한 제안"이라며 "현재는 다수 수상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지원을 분배하고 있으나 앞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오프라인 매장 판매를 하고 싶어도 높은 수수료 탓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제작자가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항이나 공영 관광지 내 기념품 입점 지원 등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당장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최근 제주현대미술관에 일부 수상작이 입점할 수 있도록 연결해줬다"며 "제주공항 같은 경우 협회 차원에서 감당할 수 있는 임대료가 아니다. 대신 출발장과 도착장 대합실에 부스를 설치해 공모전 수상작을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협회장은 "일단은 협회가 직접 운영하는 제주 여행 공공플랫폼인 '탐나오'에 공모전 수상작 입점을 지원하고 있다"며 "또 메가쇼 박람회를 통한 현장 홍보와 함께 참여 기업 간 연계를 돕고 최근에는 현대백화점 팝업스토어와 같이 민간기업과의 협업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상작 지원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묻는 말에는 '예산 부족'을 들었다.
제주관광기념품 공모전 제주도 지원 예산은 1억원이다.
강 협회장은 "예산이 적어 공모전 수상작에 대해 일회성 지원밖에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주 기념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공모전 외에도 창작자가 부담 없이 상품화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유통과 홍보 강화를 위한 추가 지원을 주문했다.
강 협회장은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기념품 브랜드가 육성돼 제주 관광기념품이 고품질·독창성·지속가능성이라는 인식이 확립된다면 제주 관광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agon.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