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정상, 손익계산…서로 절충했지만 이행까지 암초 곳곳에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에너지와 인프라 분야 '30일 휴전' 추진에 합의하면서 두 정상의 '손익계산서'에도 관심이 쏠린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종전 협상안의 불씨를 살리며 3년을 넘긴 전쟁 종식을 향한 첫 합의를 만들기 위한 동력을 이어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우크라이나전쟁 종전 외교를 본격 시작했지만, 우크라이나와 유럽으로부터 '친(親) 푸틴' 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쳤다는 비판을 샀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과 2014년 이래 러시아에 빼앗긴 우크라이나 영토의 전면 수복을 '비현실적 요구'라고 규정하며 선을 긋고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른 데 이어,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언쟁을 벌인 뒤 그를 백악관에서 사실상 내쫓은 모양새를 보이면서 '친러 행보 논란'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우크라이나와의 고위급 회담을 거쳐 '30일 전면 휴전안'을 추진키로 하는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우크라이나에 대해 끊었던 무기 및 정보 제공을 재개함으로써 '친러 편향' 논란을 일부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중대 고비였던 푸틴 대통령과의 유선 협상에서 비록 대상은 축소했지만, 부분적으로나마 휴전을 시작하기로 하는 한편, 전면적 휴전에 대한 협상도 개시하기로 하는 '부분적·단계적 휴전안'을 도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통화로 '득점'만 한 것은 아니다. 전면 휴전안에서 한발 물러서는 '양보'를 해야 했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정보 지원 중단이라는 난감한 요구 사항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일단 전임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대러 강경 기조에서 크게 전환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휴전 협상과 관련해 공을 우크라이나로 넘겼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우크라이나에 내줬던 자국 영토 쿠르스크를 북한의 병력·무기 지원 등에 힘입어 상당 부분 탈환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던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에 전열 정비의 시간을 주는 현시점에서의 휴전이 달가울 리 만무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구상을 거부할 경우 '판을 깼다'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비판이지만 결정적 우군의 입지를 약화함으로써 '트럼프 효과'를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푸틴 대통령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푸틴 대통령은 부분적인 합의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는 동시에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및 정보 지원 중단'이라는 자신의 요구도 동시에 압박하는 나름의 '절충'을 택한 모양새였다.
부분적 휴전안을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여도 전면 휴전은 아닌 만큼 공세의 고삐를 계속 당길 수 있고, 우크라이나가 수용하지 않으면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리며 더욱 강하게 몰아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을 감안하고라도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부분적 휴전'이라는 전쟁의 '작은 출구'를 여는 데 동의한 것은 나름의 '리스크'를 감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부분적 합의라 하더라도 평화와 관련된 합의 이행이 한번 시작되면 추후 그것을 뒤엎는 행동을 하거나, 합의(휴전을 이어가기 위한 합의)를 거부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합의의 기한이 만료됐을 때 전쟁을 계속하려 하는 쪽에 국제사회의 비판이 집중될 수밖에 없기에, 지금 '승기'를 잡았다고 여기는 푸틴 대통령으로선 부분적 휴전마저도 썩 달갑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러시아의 셈법을 추정할 때 이번 미·러 정상간 합의가 실질적 '부분 휴전 합의'로 연결될지는 속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 미측 발표는 휴전 대상이 '에너지 및 인프라'로 규정된 반면, 러시아 측 발표는 '에너지 인프라'로 적시된 것도 미묘한 '복선'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정유 시설과 송유관 등 에너지 인프라만 휴전 대상으로 간주한 반면, 미국은 거기에 더해 교량, 철도, 도로 등 민간 인프라까지 폭넓게 휴전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라면 향후 문안 협상에서 진통이 있을 수 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이 이날 거론한 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정보 지원 중단 요구를 부분 휴전의 조건으로 고수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휴전안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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