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식물인간과 뇌사는 다르다?

연합뉴스 2025-03-19 07:00:09

식물인간은 자발적 호흡…뇌사자는 인공호흡기 필요

식물인간은 살아 있는 상태…뇌사 판정 시 법적 사망

장기기증 전제로 뇌사 판정…뇌사 기증자 연간 400명대

생명 나눔의 기록들, 사진전 '장미-찬미' 열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최근 뇌사 상태에서 치료받다가 숨진 초등학생의 유족이 자식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뉴스가 나오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일었다.

"뇌사면 식물인간인데 살아날 수 있는 상황에서 왜 장기를 기증하냐?", "뇌사와 식물인간이 무엇이 같냐?" 등 뇌사와 식물인간을 어떻게 볼지를 놓고 의견이 대립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식물인간과 뇌사는 비슷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물인간과 뇌사는 확연히 다르다. 식물인간은 뇌 손상을 입은 환자가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자발적 호흡이 가능한 상태다. 반면 뇌사는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으로 자발적인 호흡이 불가능해져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의식이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뇌사 판정을 받을 경우 장기기증은 어떤 절차를 거쳐 진행되는 걸까?

◇ 식물인간은 살아 있는 상태…뇌사 판정 시 법적 사망

식물인간은 심장 정지 등으로 인해 일정 시간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돼 뇌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혼수상태에 빠진 상황을 말한다.

식물인간은 뇌 부분 중 대뇌피질이 손상돼 인지 기능이 없지만 뇌간은 살아 있어 호흡·소화 등 자율신경 기능은 작동한다.

주변 환경을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자발적으로 호흡하고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장기등기증희망자 등록

따라서 영양분만 공급되면 장기간 생존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식물인간 상태로 10년 이상, 20년 이상 살았다는 보고가 있다. 대뇌 기능이 호전되면 의식을 되찾을 수도 있다.

이와 달리 뇌사는 대뇌뿐 아니라 뇌간도 손상돼 자발적인 호흡이 불가능하다. 의료기기의 도움이 없다면 숨을 거둘 수밖에 없는 상태다.

생(生)과 사(死)라는 이분법으로 가르자면, 식물인간은 생에 해당하고, 뇌사는 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단, 뇌사 상태에 있다고 해서 바로 법적인 사망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뇌사 판정을 받아야 법적 사망으로 인정된다.

◇ 법에 따라 3차례 검사 후 최종 뇌사 판정

우리나라에선 장기 기증을 전제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하 장기이식법)에 따른 절차에 따라 뇌사 판정을 진행한다.

우선 뇌사 판정의 선행 조건이 있다.

치료될 가능성이 없는 뇌 손상이 있을 것, 인공호흡기로 호흡이 유지되고 있을 것, 치료 가능한 약물중독이나 내분비성 장애 등의 가능성이 없을 것, 저체온 상태가 아닐 것 등이다.

쉽게 말해 뇌 손상이 돌이킬 수 없고, 자발적인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로 의식이 없는데, 이런 혼수상태가 약물중독이나 저체온, 다른 장애로 인한 것이 아닌 것이 확실할 때 뇌사 판정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뇌사 판정은 모두 세 차례 진행된다.

장기기증자에게 보내는 편지

첫 번째 판정에선 외부 자극에 전혀 반응이 없는 깊은 혼수상태인지, 자발호흡이 되살아날 수 없는 상태로 소실됐는지, 7가지 뇌간 반사가 없는지 등을 살핀다.

또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상태에서 10분 이내에 자발 호흡이 돌아오는지도 확인한다.

이 모든 검사에서 부정적인 판단이 내려지면 다시 한번 앞선 검사를 재차 진행한다.

뇌사 판정 대상자가 6세 이상이면 1차 검사 후 6시간이 지난 후에, 1세 이상∼6세 미만이면 24시간 후, 생후 2개월 이상∼1세 미만이면 48시간 후에 2차 검사를 진행한다.

두 번째 검사에서도 부정적인 판단이 내려지면 최종적으로 뇌파 검사를 한다. 대뇌 활동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뇌파가 전혀 기록되지 않은 상태가 30분 이상 지속되면 검사가 종료된다.

◇ 장기 기증 뇌사자 최근 6년간 400명대

뇌사 판정은 장기 기증을 전제로 한다.

의사가 뇌사로 추정되는 환자를 진료하면 통상 환자의 가족에게 장기 기증이나 연명치료 중단을 권고한다.

환자가 의식을 잃기 전에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다면 가족이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이상 장기 기증 절차에 들어간다.

환자가 사전에 기증 동의를 하지 않았다면 가족들이 기증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결정권의 순위는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순이다.

뇌사자 장기기증 추이

장기이식법은 장기 등의 기증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에 따라 진행하도록 규정했다.

금전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대가로 장기를 주고받거나 이식을 받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됐다.

뇌사 장기 기증자 수는 최근 몇 년 사이 400명대에서 정체된 상태다.

뇌사 기증자 수는 2002년 36명에서 꾸준히 늘어나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18년 400명대로 내리고서 2023년까지 6년째 400명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뇌사 기증자 수가 적은 편이다.

국제 장기기증 및 이식 등록기구(IRODaT)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당 뇌사 기증자 수는 우리나라가 2023년 기준 9.32명으로, 81개국 중 39위를 기록했다.

1위는 스페인으로 인구 100만명당 49.38명에 달했다. 이어 미국(48.04명), 포르투갈(36.80명), 벨기에(32.70명), 슬로베니아(30.95명) 등도 상위권에 포진했다.

아시아권 국가는 뇌사 기증자 순위가 낮은 편이었다.

중국(4.50명), 대만(5.85명), 홍콩(3.20명), 일본(1.18명) 등은 40∼6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하는 존엄사도 법적 인정

뇌사와 유사하지만 다른 개념인 존엄사라는 것도 있다.

존엄사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연명 조치를 개시하지 않거나 중지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한 채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존엄사를 소극적 안락사의 한 유형으로 분류한다.

단, 적극적·의도적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인 안락사와 존엄사가 혼용되고 있어 존엄사를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용어로 쓰자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2016년 제정돼 2017년 시행 중인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으로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존엄사가 사회적으로 수용된 데에는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한 2009년 대법원판결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할머니가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그의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연대의료원, 존엄사 집행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2009년 5월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며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 치료 행위는 이미 시작된 죽음의 과정에서 죽음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런 연명치료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판결 후 2013년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을 제시하면서 특별법 제정을 권고했다.

이후 존엄사와 함께 임종 돌봄이 다뤄져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현재와 같이 호스피스 내용도 담긴 연명의료결정법이 만들어졌다.

가톨릭에선 일찌감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으로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호흡하다가 숨을 거두면서 각막을 기증했다.

pseudojm@yna.co.kr

[표] 세계 뇌사시증자 수 통계

(단위: 인구 100만명당 명)

※ 국제 장기기증 및 이식 등록기구(IRODaT) 2023년 기준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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