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 강제규 감독 "일본서 속편 제안 많아…2년째 준비 중"

연합뉴스 2025-03-19 01:00:02

26년 만에 리마스터링 재개봉…"삼성 인프라 활용·경기장 도둑 촬영도"

"북한 유학생 만난 뒤 집필…송강호 리얼리티 연기, 대세 될 거라 생각"

강제규 감독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쉬리'가 일본에서 특히 성공을 거두면서 아직도 속편 제작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탑건'은 30년이 지나서도 속편이 나왔다면서요. 어떻게 하면 관객이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2년째 만지고 있습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로 꼽히는 영화 '쉬리'의 강제규 감독은 18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재개봉 기념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쉬리 2' 연출 계획이 없느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쉬리'의 재개봉은 1999년 정식 개봉 이후 26년 만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깨끗한 화질로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강 감독은 "그동안 깊은 지하 심연에 숨어 있었던 영화"라면서 "집 나간 자식을 찾은 기분이라 너무 기쁘고 반갑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영화는 국가 일급비밀정보기관 특수요원들이 북한군 대장, 남파 간첩, 내부 첩자에 맞서 벌이는 숨 막히는 첩보전을 담은 작품이다. 한석규, 최민식, 김윤진, 송강호 등 쟁쟁한 배우진을 내세웠다.

여기에 막대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한 대규모 총기 액션, 서울 잠실주경기장 로케이션 촬영 등 전에 없는 시도를 해 "한국 영화계는 '쉬리' 전과 후로 나뉜다"는 평가를 듣는다. 약 6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당시 기준 역대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로 기록됐다. 일본에서도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지난해엔 재개봉까지 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영화 '쉬리' 속 한 장면

하지만 당시 투자배급사인 삼성영상사업단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해체된 이후 지식재산권(IP)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그간 IPTV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조차 '쉬리'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다 CJ ENM이 IP 활용 대행사로 나서며 극장에 걸리게 됐다.

삼성영상사업단은 삼성전자가 영상산업 진출을 위해 만든 계열사로, '쉬리'에 제작비 22억원을 투자했다. 한국 영화 제작비가 20억원을 넘긴 건 '쉬리'가 처음이었다.

강 감독은 원래라면 50억원은 족히 들었을 작품이었지만 삼성전자 공장, 삼성플라자, 삼성SDS 사무실 등 삼성의 각종 인프라를 활용한 덕에 제작비를 아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변에서 '쉬리'를 재개봉한다고 하니 영화 속 헬기에 새겨진 삼성 로고를 못 지우냐고 묻더라"라며 "오늘도 영화를 보는데 낯이 뜨거웠다"고 웃었다.

그는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도둑 촬영'도 감행했다고 털어놨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잠실주경기장 장면에서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촬영 허가를 해주질 않았어요. 그래서 아는 KBS 기자한테 부탁해서 KBS 스티커를 얻어다가 카메라에 붙이고 (취재하러 온 것처럼) 경기장에 들어갔지요. 한석규 씨하고 저는 화장실에 몰래 숨어 있다가 나왔고요, 하하. 마치 007 작전 같았어요. 거짓말 같은 현실이었지요."

'쉬리'는 스케일과 장르로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남북문제를 전면으로 다루고 여기에 로맨스와 우정까지 섞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영화 '쉬리' 속 한 장면

강 감독은 이 작품의 전작인 '은행나무 침대'(1996)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 중국 베이징에 머무르며 북한 유학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그동안 알던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고 비로소 북한을 이해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우리와 똑같이 잘 살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동포이고 국민이더라고요. 그때 알게 된 친구들을 통해 들은 몇 가지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러다 종합선물 세트 같은 장르 영화로 만들어야 변별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방향을 틀었습니다."

'쉬리'가 워낙 흥행한 작품이다 보니 이 영화에서 조연이나 단역으로 나온 배우들의 면면도 지금 보면 화려하다. 주인공 유중원(한석규 분)의 친구이자 동료 이장길 역의 송강호는 조연으로, 황정민, 김수로, 장현성, 이종혁 등은 단역으로 분했다.

특히 이장길 역은 차인표에게 먼저 제안이 갔다가 거절당해 송강호에게까지 가게 됐다. 당시 송강호는 '넘버 3' 속 코믹 캐릭터로 막 배우 커리어를 쌓아가던 시점이었다.

강 감독은 "'넘버 3'를 보며 대한민국에 어떻게 이런 배우가 있는지 충격을 받았다. 엄청난 서프라이즈였다"면서 "송강호 씨의 리얼리티 있는 연기가 앞으로 대세가 될 거라 생각해 캐스팅했다"고 돌아봤다.

영화 '쉬리' 속 한 장면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