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조원 러 동결자산 압류해 우크라 지원 활용 고민하는 유럽

연합뉴스 2025-03-18 18:00:11

동결자산 원금 건드릴 수 있나…위법성·실행가능성 놓고 의견 분분

러시아 자산 압류해 우크라 지원 촉구하는 시위대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 과정에서 러시아에 밀착하는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의 동결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원금을 압류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그 위법성 여부와 실행 가능성 등을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약 3천억 유로(475조원)를 동결했다.

이 중 2천100억 유로(332조원)가 유럽연합(EU) 회원국 내에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1천830억 유로(290조원)가 벨기에 유로클리어에 있다. 나머지 동결자금은 프랑스와 영국, 일본, 스위스,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의 금융 기관에 있다.

이 동결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은 그간 우크라이나가 G7 국가에 진 차관 500억 유로(77조원)를 상환하는 데 쓰였지만, 현금·국채 등으로 구성된 원금 자산은 그대로다.

동결 자산에서 나온 수익 활용은 그동안 법적·재정적 문제를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폴란드와 영국,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은 러시아가 끼친 막대한 피해를 고려해 원 자산까지 압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독일, 프랑스 등 EU 주요국들은 국제법상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방안에 반대해왔다. 아울러 자산을 압류해버리면 향후 러시아와 있을 평화 협상이나 휴전 이행 과정에서 협상 카드로 이를 쓸 수 없다고 이들은 우려한다.

에리크 롱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중앙은행들에 있는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국제법에 위배된다"며 러시아 자산이 법적 근거 없이 압류되면 "유럽 금융 안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도 지난 6일 "동결된 자산에 대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황금알을 낳는 닭처럼 그 수익이 우크라이나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엔 프랑스와 독일도 러시아의 동결 자산의 활용 방안 논의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프랑스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정이 체결된 뒤 러시아가 이를 위반할 경우 유럽 각국이 러시아 자산을 압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러시아 동결 자산의 대부분이 유로화 표시 자산이란 점에서 이 자산이 동결되면 안전 자산으로서의 유로화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중국 같은 국가가 EU 국채를 매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U 깃발

러시아 동결 자산 압류의 국제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자산 압류가 러시아에 대한 적절한 '대응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나이젤 굴드 데이비스 선임연구원은 AP통신에 "침략자의 자산을 이용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규칙 기반 질서를 유지하는 것 사이에는 딜레마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동결자산 압류는 합법적 대응조치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 밴더빌트대 로스쿨의 잉그리드 브렁크 교수는 "국제법이 중앙은행의 준비금을 압류로부터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이는 한 세기 동안 지켜져 온 신성불가침 원칙"이라고 말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내 금융·안보 센터(CFS) 소장인 톰 키팅은 러시아 자산 압류의 법적인 문제는 "50대 50"이라며 정치적 의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짚었다.

과거 미국은 동결된 이란 중앙은행의 자산 약 20억달러(2조9천억원)를 압류해 1979년 이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 사건의 피해자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관련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유엔 결의안과 관련 평화 협정에 따른 것으로 법적으로 정당화될 이유가 충분했던 것으로 해석됐다.

러시아는 동결 자산의 압류가 불법이라고 주장해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달 초 "우리는 이러한 의도를 불법으로 보며 이를 실행하려는 시도는 매우 심각한 법적 결과를 수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자국 동결 자산이 압류될 경우 맞대응으로 러시아에서 사업하는 1천800개 서방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다.

dy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