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법원 명령 무시하고 답변요구도 거부…NYT "헌정 위기"
"트럼프, 무제한·무견제 권력행사 과시하려 해" 비판 제기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에서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조치들 중 일부에 대해 제동을 걸었는데도 행정부가 사법부의 명령을 무시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훼손하면서 헌정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17일(현지시간) "백악관과 법원들 사이의 갈등이 헌정위기가 될 위험이 있다"며 "최근 트럼프의 행정조치 다수를 중단시키려고 시도한 연방법원들과 법원 명령의 공개적 거부에 가까운 일을 거듭해 온 행정부 사이의 발화점"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한이 없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의 모습을 세상에 과시하려 한다며 "트럼프가 법원들과 충돌하는 경로로 이미 가고 있으며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표현했다.
지난 주말부터 큰 이슈가 된 것은 '추방 항공편' 문제다.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1798년 제정된 '적성국 국민법'(AEA) 등을 근거로 베네수엘라 국적자 수백명을 범죄조직원으로 일방적으로 지목해 재판 등 절차 없이 추방하려고 한 조치를 일단 중단토록 하면서, 설령 추방 항공편이 이미 이륙했더라도 미국으로 돌아오도록 조치하라고 정부에 토요일인 15일 명령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보스버그 판사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엘살바도르 정부와 미리 협의해둔 계획에 따라 추방 대상자들을 엘살바도르의 감옥에 수감시켰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 등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보스버그 판사를 조롱하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의 게시물을 공유하며 조롱에 가세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폴리티코는 "트럼프 2기 임기에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의 시스템에 대한 가장 비중 있는 시험이 찾아왔다. 그리고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에서 '국경 담당 차르'로 불리는 톰 호먼은 1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나는 판사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좌파가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쓰지 않는다"며 강제 추방 드라이브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보스버그 판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명령을 위반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17일 법무부 변호사를 심문에 출석시켜 추방 항공편들의 출발지·경유지·목표지와 출발·도착 시간 등 기초적 사실관계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무부 변호사는 "국가안보 우려"를 대며 답변을 계속 거부했다.
NYT에 따르면 법무부는 변호사를 출석시키기 전부터 답변을 거부할 것이라며 심문 취소를 요구하는 서한을 판사에게 보냈다.
판사가 심문 취소를 거부하자, 법무부는 상급 법원인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에 보스버그 판사를 이 사건 담당에서 아예 제외해 달라며 매우 이례적으로 재판부 교체를 요구하는 서한까지 보냈다.
보스버그 판사는 18일 정오까지 추방 비행편들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라고 정부에 명령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따를지는 불확실하다.
이외에도 트럼프가 내린 행정명령이나 조치 중 최근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경우는 상당히 많다.
헌법에 규정된 '출생 시민권'을 120여년 된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달리 해석해서 제한적으로 적용하라는 명령, 트랜스젠더 치료를 하는 의료기관들이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유지하는 기관들로부터 연방정부 자금을 박탈하라는 명령, 노동관계위원회(NLRB) 위원 해직 등 다양한 조치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법적 혼선이 발생하는 데 대해 "'일단 결정부터 내리고 법적인 방어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방식으로 정책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매체는 "이 행정부는 적어도 범죄조직원으로 지목된 이들을 실은 추방 항공편 문제에서는 여론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이 문제가 쟁점이 되는 것을 공화당 측이 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고의적인 거부와 관료적 무관심 사이의 경계선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있다. 그리고 변호사들과 법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경우에조차, 사법 시스템은 행정부가 대통령 명령을 실행하는 민첩성을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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