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다시보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

연합뉴스 2025-03-18 17:00:04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는 언제?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파면을 결정했을 때 안창호 재판관이 낸 보충의견의 일부 내용이다. 이날 안 재판관을 비롯해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이 '다수 의견에 동의한다'면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 보충의견을 냈다. 김·이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 관련 탄핵 소추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데 동의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이 당시 불성실하게 대응했다는 점을 지적했고, 안 재판관은 대통령 파면까지 몰고 온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주로 거론하면서 권력구조 개편을 제안했다.

안 재판관(현 국가인권위원장)의 보충의견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시점에 또다시 소환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 때 여당 추천 몫으로 재판관이 된 그는 공안 검사 출신으로 보수 성향 인사로 꼽히지만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또다시 갈라진 우리 사회가 한번 되새길 법한 것들을 보충의견에 담았다. 요즘 인권위가 국제 인권기구에 헌재를 비판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논란을 빚고 있지만 8년 전에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헌재 홈페이지에 게시된 당시 안 재판관의 보충의견을 보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라면서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반으로 한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 시내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

보충의견은 권력구조 개혁에도 많은 내용을 할애했다. 안 재판관은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이 피청구인(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를 부추긴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더욱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은 통치보다는 협치, 집권보다는 분권,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 행사로 나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모적 정쟁을 조장해온 제왕적 대통령제는 협치와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권력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이념을 떠나 헌법적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래를 위한 권력구조 개혁의 청사진을 나름 제시했다. 당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선고에 앞서 "이 선고가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하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고통스럽지만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산'은 우리 사회가 어차피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미룬다고 돌아갈 길이 생기지 않는다. 헌재 재판관들이 날로 심각해지는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bond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