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김울프의 'K-지오그래피' 이야기…달리기는 나의 힘

연합뉴스 2025-03-18 00:00:20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마라톤하는 김울프 사진작가

인간은 장거리를 달리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다.

멈추지 않고 42㎞를 달릴 수 있는 건 영장류를 포함한 모든 동물을 통틀어 인간이 유일하다. 몇 시간씩 멈추지 않고 뛸 수 있는 것은 직립으로 서서 달리기 때문이다.

두 다리로 서서 허리를 펴고 멀리 앞을 내다보며,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린다. 땀으로 체온을 조절하고, 여러 근육을 번갈아 사용해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은 빨리 가기보다 멀리 가는 법을 택했다. 두 발로 걷고 달려 동물의 무리를 끝까지 따라가 탈진한 동물을 사냥한 것이 인류의 역사다. 인간 모두의 몸에는 그 뜨거운 피가 흐른다.

어린이도 틈만 나면 달린다. 다들 어렸을 적에 신나게 달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농경사회가 되면서 노동에 몸을 쓰면서부터, 일부러 달리기할 이유는 없어졌다.

처음 우리나라에 테니스가 들어왔을 때, 뭇 양반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저렇게 힘든 일(?)은 노비에게나 시키지'라고 했다지 않은가.

학창 시절 선생님은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라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체육 시간마저도 빼앗겼다.

학창 시절의 운동은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훌륭한 어른이 돼 손발을 고생시키지 말고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하며, 공부에 인생을 걸어 보고자 했으나 '다소 산만하다'라는 수식어를 얻었을 뿐, 성적은 별로였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았다가, 노래방에 가서 당시 유행하던 크라잉넛의 '우리는 달려야 해, 바보 놈이 될 순 없어~ ♬, 말 달리자'를 목청껏 불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신이 나도 달리지 않는 성인이 됐다.

마음이 무너져 하루에 스무시간씩 잠자던 2017년, 선물처럼 달리기가 내게 찾아왔다. 해외 관광청 사진을 촬영하러 간 따뜻한 나라의 섬에서 열리는 달리기 대회였다.

"다들 인생을 제대로 즐기네요. 저도 언젠가 이 섬에 달리기하러 와야겠어요."

반짝이는 바다, 살랑살랑한 바람에 취해 이렇게 말했다.

"작가님, 체형이 달리기 잘하실 것 같은데 관심 있으시면 한번 지원해 보시죠."

후원사인 신발 브랜드 담당자가 권한 프로젝트 덕분에 '러닝 크루'(Running Crew) 문화의 창시자를 만나게 됐다.

사이판 마라톤 완주자의 모습

◇ 웹을 통한 러너의 탄생

"각 대학이나 도시에는 육상트랙에서 모여서 달리는 '트랙 앤 필드'(Track and Feild)라고 불리는 고전적인 러닝 클럽과 마라톤 문화가 있었다. 백인 중에서도 기득권만을 위한 문화였다. 흑인이자 직업이 DJ인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서 나와 달릴 사람을 구했다. '누구든 환영, 함께 모여 달리고, 달리기로 친구가 됩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다. 참가자가 나와 내 친구만이 전부일 때도 있었다. 하나둘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004년 런던과 뉴욕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전 세계로 확산했다."<찰리 다크·런던을 기반으로 하는 러닝 크루 '런뎀'(Run Dem) 창시자>

이처럼 현대는 '웹'이라는 것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하나로 통하게 하고, SNS 서비스를 통해 서로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크루(CREW)' 문화 또한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오프라인에서 모이는 '번개' 모임의 형식으로 시작됐다.

한 골목만 넘어가도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에서 모르는 길을 달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도시는 원래 삭막한 곳이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가 생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BTG 문화가 탄생했다. 자신이 동네를 대표하는 사람이 돼 친구들을 초대하고, 친구의 동네를 달리는 경험인 'Bridge the Gap'(서로의 간극을 줄인다는 뜻) 문화는 삶을 살아가는 적극적인 방식, 달리기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됐다. 곧 여행자가 그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이 됐다.

크루는 함께 달리면서 외친다.

"우리 동네로 놀러 와!"

세상의 모든 동네는 각각의 특색이 있다.

함께 달리는 모두는 자신의 동네에 애틋한 마음과 자부심이 있다. 달리기할 때 무거운 짐을 들고 뛸 수는 없다. 모두에게 공평하고, 함께 달리기 위해서는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사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달리는 사람도 모른다. 도시를 위해서도, 어떠한 가치를 위한 것도 아니지만, 디자이너, 사진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의 참여와 기여가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크루는 원래 선원을 원래 의미했다. 모두 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곳에서 함께 달리는 모두의 관심은 더 빨리 가거나 멀리 가는 것이 아닌, '함께 달린다'는 사실 그 자체다.

오래전부터 운동 경기는 모두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운동장이라는 곳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고, 지덕체를 겸비한 높은 신분의 사람끼리 규칙을 정하고, 규칙 내에서 명예를 위해 겨룬 것이 운동 경기의 역사다.

아무나 할 수 없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달리기다.

모두가 즐기고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것이 됐다. 문명이 발달하고 여행이라는 문화가 생겨나고, 미지의 세계인 부족사회에서 지구촌으로 변해 온 것처럼, 지금은 어느 때보다 달리기 좋은 세상이 됐다.

러닝하는 '김울프' 작가

달리고 나면 늘 기분이 좋다.

'아무렴 어때' 내일 지구가 멸망해 내가 없다 하더라도 오늘 나는 달리기를 할 것이다.

지구상 어디라도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달리기는 할 수 있다. 핑계의 어원은 3천여개라고 들었다.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달린다.

언제부터, 무엇을 위해, 왜 이토록 열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리기는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어딘가에 닿지 못하면 또 어떠하리.

나는 내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안다.

한 발짝 앞으로. 오늘의 달리기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달리고 또 달리게 됐다.

그렇게 러너로 탄생했고, 크루가 됐다.

드라이브 기아 '김정욱의 익스트림 스포츠 사진'

김정욱 (크루 및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의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