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오르반, 야권에 '벌레들' 독설 날리며 자금단속 예고

연합뉴스 2025-03-17 19:00:14

국경절 연설하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유럽연합(EU) 회원국임에도 친러시아 행보를 보여온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EU를 비롯한 서방국의 자금 지원을 받는 정치인이나 언론기관, 시민단체 등을 단속하겠다고 공언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는 지난 15일 헝가리 국경절 기념 집회 연설에서 "오늘 축하 행사 후에는 대규모 '부활절 청소'가 진행될 것"이라며 "벌레들이 겨울을 넘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EU나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시민단체와 언론기관, 사법부 관계자, 정치인 등으로 구성된 '그림자 군대'를 없앨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오르반 총리가 대대적 사정을 예고한 대상은 EU와 미국 등의 후원 속에 오르반 정부의 친러시아 행보를 비판하거나 국정 기조에 비협조적인 기관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1년 뒤 총선을 앞둔 헝가리는 경제성장 정체와 고물가 등으로 시달리는 상황에서 반정부 여론에 힘입어 야당 지지율이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벌레들'이라는 독설까지 내뱉으며 야권 세력의 자금 운영을 단속하겠다는 오르반 총리의 행보는 지금의 정치 지형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르반 총리와 절친한 사이로 널리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해체한 점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르반 총리는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를 지칭하는 자국 내 '반정부 조직'에 USAID의 지원금이 흘러 들어간다고 주장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USAID 해체 결정을 환영한 바 있다.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여당 피데스당은 언론 기관에 외국 자금이 들어가는 걸 규명할 법안, 자국 주권에 위협이 되는 이중국적 시민을 추방할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 및 법률 개정안 등을 검토 중이다.

prayerahn@yna.co.kr